20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달 중순 타타대우상용차가 서울고법에 낸 소송에서 패소해 트럭 제조사들과의 담합 시정 불복 소송에서 전패했다. 1심 효력이 인정되는 공정위 명령에 기업이 불복하면 서울고법과 대법원 소송 절차를 밟는다. 보통 공정위 결정에 대한 불복소송은 대법원까지 끌고 간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번만큼은 대법원에서 승산이 없다고 보고 상고도 포기했다.
앞서 공정위는 만트럭버스코리아·볼보코리아·스카니아코리아 등이 낸 똑같은 소송에서 모두 져 과징금을 환급해줬다. 현대자동차와 다임러트럭코리아는 애초에 자진 신고해 과징금이 거의 모두 감면됐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대부분 “기업들이 서로 가격정보를 교환해 트럭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려 합의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직원을 표창할 정도로 성과를 강조했던 트럭 가격 짬짜미 사건이 소송비용만 낭비한 채 허무하게 마무리되면서 공정위의 역량에 대한 비판이 또다시 확산되고 있다. 갈수록 정교해지는 불공정거래를 제대로 단속할 수 있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과징금 불복 소송에서 지는 일이 잦지만 패소 가능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도 “지나치게 소송에 신경을 쓰면 불공정 행위를 적극적으로 적발할 수 없다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사례만 봐도 공정위는 라면 제조사 가격 담합 소송에서도 패해 농심에 과징금 1,050억원과 3년치 법정이자를 돌려줬다. SK그룹의 SK C&C 부당지원 행위 소송에서도 완전 패소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정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는 2012년 이후 ‘이달의 공정인’ 수상자 70명 가운데 61명이 과징금 불복 소송에 휘말렸다.
박 의원실 자료를 보면 지난해 공정위가 소송에서 져 돌려준 과징금 역시 1,582억원으로 2015년 341억원과 비교하면 5배 규모로 뛰었다. 지난해는 농심에 부과했던 과징금 1,050억원을 돌려준 여파가 컸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공정위의 과징금 환급 규모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2012년 61억원이었던 환급액은 2년 만인 2014년 188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2015년에는 또다시 2배 수준으로 급증한 셈이다. 공정위가 다소 무리하게 불공정거래의 굴레를 기업들에 씌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정위도 할 말은 있다. 과점기업끼리 장기간 가격정보를 교환한 행위를 담합행위로 보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합의서를 남기지 않는 한 담합행위의 증거를 찾을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트럭 담합 사건을 조사했던 공정위 관계자는 “압수수색을 해도 합의서가 없다면 증거를 찾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담합을 너무 엄격하게 판단하면 조사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트럭 담합건 이후로 공정위도 담합행위 입증에 더욱 신중해졌다”면서 “트럭 담합과 비슷한 건에 대해서는 입증을 좀 더 세밀하게 하고 합의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어떤 행위를 담합으로 규정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각국 사법부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유럽연합(EU)은 가격정보 교환 자체도 담합을 조장하는 유력한 증거로 추정한다. 호주 역시 정보교환을 원천 봉쇄하고 있으며 미국은 가격정보 교환을 담합으로 보지 않지만 사건별로 중요한 정황증거로 고려한다.
/이종혁기자 세종=강광우기자 2juzs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