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전 데뷔 틸러슨, 中에 외교적 승리 안겼다"

"북핵대응 中압박 못하고
中의 대국관계 수용 발언"
WP '외교 초보 한계' 비판
韓日 순방때와 달리 저자세
"외교수장 자질 의심" 평가

19일 중국 베이징에서 렉스 틸러슨(왼쪽) 미 국무장관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베이징=AP연합뉴스


세계적인 석유기업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 순방길에 보여준 ‘저자세 외교’로 구설수에 올랐다. 먼저 들른 한국과 일본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해 “중국이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강경론을 펼쳤지만 정작 베이징에서는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의 주요2개국(G2) 외교 노선인 ‘신형대국관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노련한 중국 외교에 놀아난 ‘외교 초보’라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상거래에 밝은 틸러슨 장관이 얽히고설킨 한반도 외교 관행과 외교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틸러슨 국무장관이 사실상 첫 외교 데뷔 무대였던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개국 순방과 관련해 “중국에 외교적 승리를 안겼다”고 혹평했다. 그 근거로 WP는 틸러슨 장관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나 북핵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은 점을 우선 꼽았다. 틸러슨 장관은 또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뜻하는 세컨더리보이콧 발동 가능성이나 한국에 대한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핵 대응과 관련해 중국에 보다 큰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완전히 엇박자를 낸 것일 뿐 아니라 자국 이익을 최선으로 삼아야 할 외교 수장으로서 자질이 의심된다는 게 외교가의 평이다.

틸러슨이 저지른 실수는 또 있다. 그가 시 주석,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을 마친 뒤 참석한 기자회견에서 ‘상호존중’ ‘합작공영’ 등 중국이 밀고 있는 외교적 수사를 그대로 차용한 점이다.

당시 회견에서 틸러슨 장관은 “갈등과 대립을 피하고 상호존중, 합작공영의 정신에 따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양국 우호관계를 강조한 것이지만 미중 외교의 맥락에서 해석하면 ‘미국이 대만이나 티베트 등 영토문제를 비롯한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하고 여기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를 수용하는 뉘앙스로 해석될 수 있다. 사업가 출신인 틸러슨이 외교적 수사에 익숙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WP는 “신형대국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대만과 홍콩, 더 나아가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입장을 모두 받아들이고 미국은 떨어져 있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윌터 로먼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소장도 “중국이 (신형대국관계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협력’으로 규정한 것 자체가 미국의 위상 하락을 담은 표현”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중국은 틸러슨 장관의 방중을 자국의 외교적 승리로 평가하며 고무된 분위기다. 중국 주요 관영매체들은 버락 오바마 전임 행정부에서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던 ‘상호존중’ ‘불대립’ 등의 단어를 틸러슨 장관이 쓴 것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드디어 신형 대국관계로 접어들었다”고 환영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 역시 20일 “틸러슨 장관이 북한 문제가 아닌 중미 관계 이슈를 전면에 부각시켰다”며 “향후 50년간의 양국 관계를 정의할 대화가 필요하다는 발언은 매우 참신했다”고 평가했다. 진 칸롱 중국 인민대학 박사는 “중국과는 달리 미국은 이런 표현(상호존중)의 사용 자체를 꺼려왔다”면서 장관의 발언이 중국에서 매우 환대받았다고 말했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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