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과 1995년, 그리고 2017년 지금 한국의 사회상이 투영된 영화 세 편이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민주화에의 열망이 6월항쟁을 이끌어냈던 1987년의 ‘보통사람’,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았던 1995년의 ‘프리즌’, 국민 상당수가 지독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는 2017년의 ‘비정규직 특수요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들 영화 세 편은 강자와 약자의 먹이사슬 같은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아들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약자를 괴롭히는 ‘보통사람’의 형사,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수감자들을 못살게 구는 ‘프리즌’의 왕초, 정규직 전환을 위해 보이스피싱도 주저하지 않는 ‘비정규직 특수요원’의 실업자는 강자의 덫에 걸린 약자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근래 30년을 저마다의 모습으로 관통한다.
◇1987년의 ‘보통사람’= 이 영화는 바나나를 나눠 먹는 게 커다란 행복이었던 보통사람을 보통사람으로 살게 두지 않았던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의 아픔이 묵직한 감동으로 그려졌다. 열심히 범인을 잡는 것만이 나라에 대한 충성이라고 생각하며, 아픈 아들의 병을 고쳐주고, 2층 양옥집 마련이 꿈인 형사 이자 평범한 가장 강성진(손현주 분)은 안기부가 조작한 사건에 휘말리며 그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또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들끓는 민심을 억누르기 위해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조작하고, 이에 대한 진실을 알리려는 기자 추재진(김상호 분)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끝내 간첩이라는 누명이 씌워진다. 국가가 만들어낸 음모를 실행하는 플레이어는 역시 약자들이다. 몸이 아픈 아들을 가진 성진은 범인을 조작하기 위해 진범이 아닌 정신지체 장애인을 고문해 거짓 자백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아들의 치료와 승진 등을 보장받는다. 약자가 거부하기 어려운 강자에 의한 유혹의 손길이다. 2~년 전 기획된 이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관객을 만난다. 연출을 맡은 김봉한 감독은 “영화가 개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었다”며 “세상이 급변하면서 천운으로 관객과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23일 개봉
◇1995년의 ‘프리즌’=영화는 제목대로 감옥이 배경이다. 감옥의 ‘절대 권력자’ 익호(한석규)는 잔인한 인물로 감옥 안에서도 막대한 돈을 벌어 이 돈으로 교도소장을 교체하기도 하기도 하고, 재소자들을 다루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이 작품의 공간인 ‘프리즌’은 감옥 안의 세상과 감옥 밖의 세상 모두가 돈이라는 권력이 지배하는 물질만능주의의 정점을 달리던 1995년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을 상징한다. 나현 감독은 “1995년은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 사고가 빈번했고, 사회적으로 어지러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질서정연하면 교도소 내부도 잘 돌아가고 사회의 시스템이 엉망이면 교도소도 험악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사회가 어떤지 알려면 교도소를 보면 된다는 말에서 작품을 착안하게 됐다”고 밝혔다. 22일 개봉
◇2017년의 ‘비정규직 특수요원’=1997년 IMF는 ‘너무 일찍 터트린 샴페인’이었다. 고용 유연화라는 이름 아래 ‘비정규직’이 생겨난 것도 이때부터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7년은 직장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며, 취업준비생들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시공부를 하듯 노력해야 하는 고용불안시대다. 영화 ‘비정규직 특수요원’의 주인공 장영실(강예원)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수십 개의 자격증을 따며 열심히 살아가지만 35세에야 국가안보국의 비정규직으로 취업에 성공해 ‘댓글 알바’ 비슷한 일을 하다가 해고된다. 그러던 중 국가안보국 예산이 보이스피싱에 털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자신의 실수로 벌어진 사건을 은폐시키고 싶던 박 차장(조재윤 분)은 정규직을 보장하며 영실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잠입시킨다. 이후 영실을 서민들을 상대로 온갖 사기를 친다. 오로지 생의 목표인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 상영중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