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금융당국과 대우조선해양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일부 투자자들은 올해 4월부터 내년 3월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 1조2,900억원의 부실이 드러나며 사채관리계약에 따라 조기상환을 요구했으나 무산됐다. 2015년 당시 계약조건에는 2019년 4월까지 5년 만기인 회사채 600억원은 부채비율을 500%를 지키도록 돼 있었지만 2015년 9월 부채비율이 800%를 넘기자 조기상환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과 산은은 회사채 가운데 일부라도 조기상환이 이뤄지면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투자자를 설득해 무마시켰다.
사채관리계약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기업의 부채비율이나 담보권 설정이 일정 비율 이상 높아지면 조기 상환을 요구하는 제도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 회사채는 사채관리계약 조건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올해 4월 만기가 돌아오는 4,400억원어치의 회사채는 부채비율을 500% 이하(별도재무제표기준)로 유지하도록 설정했지만 지난해 4월 자본잠식상태에 빠지며 계약을 지키지 못했다. 올해 7월과 11월 만기가 돌아오는 5,000억원의 회사채도 2012년 계약 당시 부채비율을 1,000% 이하로 유지하도록 했지만 지키지 못했다. 내년 3월 만기가 돌아오는 3,500억원어치의 회사채는 부채비율 800% 이하 준수와 함께 지급보증이나 담보권 설정 채무 합계액이 자기자본의 500% 미만을 지키는 조건을 담았으나 둘 다 어겼다. 이들 회사채의 관리회사는 한화투자증권·신영증권·이베스트투자증권·한국증권금융이다.
그러나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의 고의적인 분식회계가 드러나며 2년 전 조기상환을 받지 못한 투자자는 금융당국의 결정에 따라 투자금의 절반을 채무조정하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회사채 투자자가 채무조정을 거부하면 투자금의 90%를 날리는 법정관리 가능성이 있다며 압박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회사채는 65% 이상을 국민연금·우정사업본부 등 연기금과 고객의 돈으로 투자하는 보험사·자산운용사가 들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 등이 부실을 알고도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투자를 계속 한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회사채는 부실 위험이 높아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면서 “투자한 기관투자가도 대우조선해양은 분식회계에 부실이 커서 많이 털어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당시 내부검토를 했으나 정부 차원에서 4조 2,0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계속 들고 있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채관리조약이 껍데기 규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3년 동양사태 이후 금융당국이 사채관리조약을 강화하고 있지만 조기 상환이 이뤄진 사례는 드물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회사가 돈이 없다며 버티면 투자자가 법적 소송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제도는 있지만 활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