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의 심성훈 대표는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은행 주식을 4%까지만 허용하는 소위 ‘4% 룰’을 완화해달라며 거의 읍소하다시피 했다. 심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인터넷은행은 개인금융으로 영업을 시작하고 기업금융을 취급할 계획도 없기 때문에 (대기업의) 사금고화가 될 수 없다”며 “은산분리를 허용하되 대주주 산업자본에 대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안에 대해서도 완전히 찬성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심 대표의 이 같은 호소에도 불구하고 은행법과 인터넷은행 특별법 등 관련 법안은 결국 국회 상임위 문턱도 넘지 못했다.
현재 국회에는 산업자본이 인터넷은행 지분을 34~5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5개의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하지만 3월 정기국회 마지막 상임위라고 할 수 있는 23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에서도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인터넷은행은 기존은행과 달리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을 활용한 은행이기 때문에 ICT 업체들이 주도권을 갖고 다양한 실험적인 시도를 해나가야 하는데 은산분리 규정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정치권이 은산 분리 규제 완화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일면 이해하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인터넷은행을 만들어놓고 관련 규제를 그대로 두면 금융권에 새로운 혁신 바람을 일으킬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등은 인터넷은행에 은산분리 규제를 한번 완화해주면 원칙 자체가 훼손된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반대에는 인터넷은행의 성장을 우려하는 시중은행들의 물밑 로비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자유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은 서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국회에서 인터넷은행에 대한 은산분리 예외 적용 논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시중은행들의 반대가 한몫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인터넷은행이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은행들의 반대가 만만찮다”고 토로했다.
다음달 3일 영업을 시작할 예정인 국내 첫 인터넷은행이 될 K뱅크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은행권에 새로운 혁신을 불어넣겠다는 큰 목표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국회의 규제 완화 의지가 없어 자칫 그렇고 그런 ‘인터넷은행’으로 전락할 수 있어서다. 금융 당국의 관계자는 “인터넷은행 출범 초기에는 수신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금을 확충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KT나 카카오 등의 지분이 4% 이하로 묶여 있으면 주요 주주인 이들 업체들이 출자를 통해 자본을 늘려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K뱅크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지키며 대출영업을 하려면 늦어도 내년까진 KT로부터 수천억원의 증자를 받아야 한다. 심성훈 K뱅크 대표는 “현재 (사업상) 가장 어려운 점은 증자 (가능) 여부”라며 “(대주주인 KT가) 자본을 태우려면 경영권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상구 고려대 명예교수는 “수십년 전 도입된 금산분리를 과거 트라우마에 갇혀 개선 논의조차 금기시하면서 인터넷은행이 불안한 출발을 하게 됐다”며 “금산분리에 발목이 잡힌 탓에 과감하게 상품이나 서비스를 도입하지 못하는 등 혁신의 불길이 사그라들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모바일과 빅데이터에 특화한 인터넷은행을 잘 키우면 ‘금융 한류’도 기대할 만하나 이대로는 어렵다는 지적인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금융에 빅데이터를 접목하는 인터넷은행은 해외 진출의 성공 모델을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라며 “핀테크 기술력을 앞세운다면 현지 은행의 합작 제안 등 러브콜이 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조권형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