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에 연루된 국내 2위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신규 감사업무 1년 정지 처분을 받았다. 예상처럼 당장 문을 닫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기존 고객’들의 계약해지가 잇따를 경우 안진의 영업기반이 흔들리며 회계업계 재편의 폭풍이 몰아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24일 임시위원회를 열어 안진에 대해 1년(2017년 회계연도) 신규 감사업무를 제한하기로 결정한 뒤 이를 금융위 정례회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안진은 업무정지 기간에 주권상장법인, 증선위의 감사인 지정회사, 비상장 금융회사의 감사업무를 새로 맡을 수 없다. 감사 중인 회사 가운데 재계약 시점이 도래한 3년차 상장회사도 감사인을 변경해야 한다. 업무정지 조치 이전에 안진과 재계약을 했어도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감사인을 찾아야 한다. 이번 결정은 오는 4월5일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의결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럴 경우 처분기간은 의결일부터 내년 4월4일까지다.
또 증권신고서 거짓 기재에 따른 과징금 16억원, 지난 2014년 위조 감사조서 제출에 따른 과태료 2,000만원, 손해배상공동기금 추가 적립 100%, 대우조선해양 감사업무 제한 5년 조치도 함께 결정했다.
금융당국은 안진이 대우조선해양의 5조원대 분식회계를 묵인·방조해 중징계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 증선위 측은 “안진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대우조선해양의 감사인으로서 장기간 회사의 회계처리 위반을 묵인·방조해 기본 책무를 저버렸다”고 설명했다.
금융위는 1년여에 걸친 대우조선해양·딜로이트안진 특별감리를 마친 뒤 감리위원회 세 번, 증권선물위원회 회의 세 번을 열었다. 통상 각 한 번씩의 회의를 거치는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장시간 논의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안진 측은 “분식회계를 고의로 도운 일은 없다”며 계속 항변했지만 당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증선위 관계자는 “안진은 법인 내 품질관리실이 감사보고서의 오류를 짚어내고도 이에 대해 조치를 하지 않는 등 품질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당국은 다만 업무정지 시작을 대부분의 기업이 감사보고서를 제출한 후인 4월 초로 잡고 신규 감사만 못하게 함으로써 시장 혼란은 최소화했다. 이에 따라 이번 처분에 따른 안진의 직접적 피해는 애초 예상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안진의 회계감사를 받는 회사가 1,100여곳 정도인데 지난해 기준 재계약 대상 회사와 지정감사 회사는 150여곳 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존 계약 회사들이 안진을 불신하는 문제가 발생한데다 당국이 감사계약 1∼2년차인 상장회사의 경우에도 감사인 교체가 가능하다는 단서를 달아놓아 잇단 계약 해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감사계약 1~2년차 회사는 안진의 감사를 계속 받을 수 있지만 감사인(회계법인) 해임사유인 ‘소속 회계사 등록취소’가 발생했기 때문에 감사인 변경을 희망하면 교체 가능하다. 증선위 측은 “감사 1~2년차라도 회사 사정상 올해 신규 감사를 체결했다면 신규 감사업무 수행 대상에서 감사인 교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회계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2위인 안진과의 계약을 바로 끊기는 어렵겠지만 한번 흔들린 신뢰는 회복이 어렵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글로벌 회계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는 안진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안진 측은 증선위의 발표 결과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제재절차는 현재 진행 중인 사항이라며 말을 아꼈다.
안진이 업무정지 조치를 받으면서 회계업계의 지각변동도 예상된다. 회계업계 ‘빅4’인 안진의 모든 업무가 당장 정지되지는 않지만 나머지 대형법인 3개사로 일감이 몰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제는 계약 규모가 큰 상장사와의 재계약이 어려워졌고 그룹사의 경우 계열사들이 한 회계법인에서 감사를 받고 있어 계약 기간이 남은 상장 계열사나 비상장 계열사도 계약을 해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안진의 대우조선 담당 회계사 중 네 명은 등록취소 처분을 받았다. ‘소속 회계사의 등록취소’는 감사인 해임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계약 기간이 남아 있더라도 회사는 감사인선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감사인을 교체할 수 있다. 안진은 이들 회사와의 계약 유지에 총력을 쏟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만큼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 회계법인을 선호하는 만큼 안진의 고객이 나머지 대형 회계법인 세 곳으로 이동할 경우 오히려 회계감사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