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이날 오전 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후 법원이 밝힌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일정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에게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가 적용됐다. 이는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 말까지 수사해 검찰에 넘긴 특별검사팀의 수사 결과를 수용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한 검찰 관계자도 “특검 사건을 상당히 고려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뇌물 공여자가 이미 구속된 점도 특수본에는 부담이었다. 뇌물 준 사람을 구속 수사하면서도 실제 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조차 청구하지 않는 것이 형평상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이날 구속영장 청구 사유 중 하나로 공범인 최순실씨와 뇌물공여자(이재용)까지 구속된 점을 언급했다.
이에 따라 이번 ‘2기’ 특수본은 대기업들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하거나 삼성그룹이 최씨 일가를 지원하는 데 박 전 대통령의 권력이 핵심 역할을 했다고 규정했다. 또 최씨에게 180여건의 국정문서를 유출하도록 지시해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한 이도 박 전 대통령이라고 판단했다. 최씨 국정농단 사태를 둘러싼 각종 의혹의 뿌리가 박 전 대통령에게서 비롯됐다는 게 특수본이 내린 결론이다. 특수본은 이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발표하면서 “피의자가 권력남용적 행태를 보이고 중요한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는 등 사안이 매우 중대하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대통령선거가 초읽기에 돌입하면서 특수본은 ‘더는 늦출 수 없다’고 봤다. 박 전 대통령의 신병처리가 대선이 본궤도에 오르는 다음달까지 늦춰질 경우 자칫 판 흔들기나 대선 개입이라는 각종 구설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이 미적거릴 경우 이는 또 주요 대선주자들의 검찰 개혁에 대한 빌미가 될 수 있다.
이날 특수본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신병처리 결정은 법원의 몫이 됐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은 오는 30일 오전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강부영(43·사법연수원 32기) 영장전담판사 심리로 열린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 구속 여부는 이르면 같은 날 밤늦게나 31일 새벽에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뇌물죄 등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만큼 양측 간 치열한 불꽃 공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혐의가 13개에 이르는데다 기록도 방대한 만큼 검찰과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 간 첨예한 의견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수본 쪽에서는 박 전 대통령 조사를 담당한 이원석(48·사법연수원 27기) 특별수사1부장과 한웅재(47·28기) 형사8부장이 공격진으로 나올 수 있다. 반면 박 전 대통령 측에서는 유영하 변호사 등 기존 변호인이 방어진을 구축한다.
역시 쟁점은 ‘뇌물죄’ 여부다. 삼성그룹의 최씨 일가 지원이 대가성 있는 뇌물이라는 게 핵심이다. 박 전 대통령 측은 “누구를 봐주기 위해 한 일은 손톱만큼도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재용→최순실→박근혜’로 이어지는 뇌물 의혹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은 관여한 바 없고 알지도 못한다는 주장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사상 유례없는 영장실질심사인 만큼 판단하는 법원은 물론 영장을 청구한 검찰에도 이래저래 부담이기는 마찬가지”라며 “법원의 판단에 따라 구속수사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박 전 대통령에게는 이번주가 운명의 시간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현덕기자 alway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