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美 경제 신뢰도 진정 회복되려면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자문
규제완화·감세·인프라 투자 등
구체적 정책 지연땐 역풍 직면
트럼프 행정부, 의회 등과 협력
추진 타임라인 얼른 내놔야



금융시장은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경제성장률이나 기업투자·임금·소비 등과 같은 ‘하드 데이터’에 반영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기업가 출신 도널드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한 지난해 선거는 미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에 긍정적인 자신감을 더했다. 그가 자신이 이끄는 행정부에서 규제 완화와 감세를 포함한 세제개편, 대규모 인프라 투자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공화당이 양원을 모두 안정적으로 차지한 것도 전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재임 기간 대부분 경험했던 교착상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더하며 미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부추겼다. 기업 및 개인의 경제 신뢰도가 이처럼 상승한 것은 미국 고유 정신에 깊게 뿌리내린 믿음을 반영한다. 규제 완화와 감세는 언제나 혁신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기업가 정신을 펼칠 수 있게 해준다는 신념이다.

물론 이 같은 심리는 양방향으로 모두 흐를 수 있다. 기업가 출신 트럼프 대통령의 친기업적 태도가 미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높일 수 있는 것처럼 지도자의 반기업적 인식은 경제 신뢰도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식이다.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실제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같은 변화는 실물 경제에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 경제학자 존 케인스는 직업과 관심·돈에 대한 연구에서 “인간 본성의 특징으로 긍정적인 활동을 이끌어낸 요인은 수학적 기대가 아니라 자발적인 낙관주의에 달려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인간의 심리 자체는 경제 발전이나 전망에 대한 정확한 척도는 아니기는 하다.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J 실러도 이 같은 낙관주의가 경제적 펀더멘털과 유리돼 불합리한 자산 평가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시장은 낙관적 상승세를 견지해왔지만 아직 하드 데이터를 반영하지는 않았다. 경제 전문가들도 성장 예측치를 소폭 상향 조정했을 뿐이다. 주식 투자자들이 가능한 상승세를 앞두고 ‘동물적 감각’으로 부응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기대가 바뀌면 포트폴리오 포지션을 빠르게 바꿀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식 투자자들과 달리 공장 건설, 시설투자 등을 단행해야 할 기업들은 트럼프의 약속이 실제 정책으로 반영되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행동을 바꾸지 않고 있다. 그들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경제활동 및 소득과 관련된 자극은 약해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많은 소비자들은 긍정적 심리를 재화와 서비스 구입으로 바꾸는 데 예금 인출 정도만을 의존해야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미국 경제는 트럼프의 공약들이 보다 구체화되고 지속 가능하게 펼쳐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다줄 추진 일정표(timeline)를 기다리고 있다. 협상 및 우선순위 등의 요인으로 공약이 지연된다면 이해관계 충돌에 따른 불확실성은 더욱 고조될 것이다. 이미 트럼프 정부는 복잡하고 여론이 극명히 나뉘는 건강보험 개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재정개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이러한 정치적 자산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교육 개혁이나 숙련 프로그램, 기술 훈련, 노동 재교육 등 장기적 생산성 향상과 관계 있는 정책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하드 데이터가 증시에 반영되는 일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 증진이 보다 명확한 자료로 변환되지 않는다면, 즉 경제 성장과 기업 실적에 대한 기대치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금융시장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돼 시장 변동성이 가속화되고 자산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 이 같은 시나리오에서 미국의 성장엔진은 세계 경제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와의 협력 등을 통해 시장에 동기를 부여할 구체적 정책을 빠르게 내놓지 못한다면 하락한 하드 데이터는 경제 신뢰도 및 자신감을 떨어뜨려 재정적 변동성을 넘어서는 역풍을 조성할 것이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그룹 수석경제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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