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 뒤집어보기] '블라인드 펀드' 힘 보여준 이지스

투자대상 정하기 전 자금 모아
알짜 매물 나왔을때 경쟁 유리
쟁쟁한 외국계 제치고
'시그니처타워' 품안에

서울 청계천로에 위치한 ‘시그니처타워’ 전경.


이지스자산운용이 올해 오피스 거래 시장의 대어(大漁)로 주목 받았던 서울 청계천로 ‘시그니처타워’를 품에 안으며 ‘블라인드 펀드’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블라인드 펀드란 투자 대상을 정하기 전에 투자자를 모으는 펀드다.

29일 부동산금융업계에 따르면 이지스는 지난 27일 매각 측으로부터 시그니처타워의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됐다는 구두 통보를 받았다. 이지스는 3.3㎡당 2,300만원 중반, 약 7,000억원의 가격을 제시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지스가 국내 기관투자가 자금으로 조성한 블라인드 펀드를 내세워 쟁쟁한 외국계 투자가들과의 입찰 경쟁에서 이겼다는 점이다. 이지스가 지난해 출자자 모집을 완료한 2,200억원 규모의 이 펀드에는 국민연금(1,400억원), 삼성자산운용(500억원), 경찰공제회(200억원), 이지스와 SK D&D(100억원) 등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우량한 코어(Core) 자산이 주요 투자 대상이며 한 개 자산당 550억원까지 투자할 수 있다.

시그니처타워의 경우 대출을 제외한 지분 투자 금액은 3,000억~3,500억원 수준으로 이지스는 블라인드 펀드를 통해 이미 확보한 550억원 외에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블라인드 펀드에 투자한 기관들에 추가 출자를 요청할 계획이다.

이지스의 이번 행보는 갈수록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외국계 투자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내 기관들이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형 오피스 거래 시장에서 외국계 투자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42%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기관들은 투자 대상이 정해진 다음에 투자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이미 투자자금을 확보하고 움직이는 외국계 투자가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직 국내에는 블라인드 펀드가 일반화돼 있지 않지만 시그니처타워 같은 경우가 생겨나면 점점 블라인드 펀드에 투자하는 국내 기관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이지스는 이번 입찰에 참여하면서 현재 을지로 사옥을 사용하고 있는 유안타증권의 이전 여부와 상관없이 투자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시장에서는 유안타증권이 시그니처타워로 이전할 가능성을 높게 봤으나 최근 들어서는 유안타증권이 을지로 사옥에 남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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