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영장심사] '최초' 기록 넘치는 근혜씨의 마지막 운명은?

[썸in이슈] 파란만장했던 '근혜씨' 인생 요약
최초의 여성·미혼·이공계 출신 대통령
최초의 과반 지지율·역대 최저의 지지율
최초 현직 '피의자', 최대규모 집회 장본인
구속 vs 기각, '근혜씨'의 마지막은 과연



20대에 퍼스트레이디로 화려한 청와대 생활, 권력의 정점에서 퇴출돼 무려 18년간의 은둔 생활, 몰락하던 보수정당의 구원자로 부활, 결국은 청와대를 재탈환. 동아시아 최초의 여성 지도자, 대한민국의 최초의 미혼 대통령이자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통령. 최초의 과반 지지율로 취임했지만 역대 최저 지지율 기록.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의 공범으로 지목된 최초의 현직 ‘피의자’, 그리고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또 ‘최초’ 기록을 더 했다. 자신이 직접 임명했던 검찰총장으로부터 처음 구속영장을 청구받아,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됐다. 이날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법원에 출석한 박 전 대통은 또 어떤 기록을 세우게 될 것인가.

서울경제썸이 ‘소녀 외교’의 주역에서 ‘선거의 여왕’, ‘수첩공주’를 거쳐 ‘길라임’ 추락까지, 다양한 별명만큼이나 파란만장했던 ‘근혜씨’의 인생을 영상으로 다시 정리했다.




◇ 엄마를 대신한 ‘퍼스트레이디’= 1961년 군인 아빠와 선생님 엄마 사이에 태어난 근혜씨. 아빠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 근혜씨는 평범한 12살 초등학생에서 ‘영애’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때부터 해외 순방길에 따라나서며 ‘소녀 외교’라는 별명도 얻었다. 아빠가 무려 18년 간 대통령을 하는 동안 근혜씨는 대학도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길에도 올랐다.

◇ 18년간 은둔생활 ‘서러움 폭발’= 부모를 모두 잃은 23살 근혜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건넨 6억 원(현재 가치 추산 33억 원)을 받고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어느 날 한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아빠와 함께 일했던 모 장관과 마주쳤는데,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지만 그대로 무시당했다고 한다. 근혜씨 인생에서 가장 서러움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 절묘한 정계 복귀 ‘미친 존재감’=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근혜씨는 “흔들리는 나라를 다시 반석 위에 올리겠다”며 정계 복귀를 선언한다. 그야말로 ‘미친 존재감’을 과시했다. ‘차떼기 파동’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무너진 보수정당을 진두지휘했다. 그 유명한 ‘천막당사’도 근혜씨 작품이다. 거대 여당을 견제해야 한다며 보수층에 호소했고 지지율은 다시 올랐다. 근혜씨의 당내 입지도 성층권으로 치솟았다.

◇ 가장 화려했지만 끝 모를 추락=‘ MB정권 심판론이 불거지며 패배가 예상됐던 19대 총선에서 152석 ‘과반’ 대승리를 거둔 근혜씨는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을 굳혀갔다. 드디어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그러나 국정원 선거개입 논란과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등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임기 내내 이어졌다. 결국 ‘비선 실세’ 최순실 씨 국정농단 사건까지 터지며 파면 당했다. 그리고 파면 20일 만에 구속의 기로 앞에 놓였다.

/정혜진·정가람기자, 강신우PD se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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