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진출 한국기업 '세금 비상등'

"이전가격 조작 막아
세금 해외유출 차단"
美, 현미경 세무조사
관세 이은 또다른 압박

한국토요타는 탈세 혐의로 지난해 말부터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세무조사의 핵심은 ‘이전가격’이다. 일본 본사와 한국법인 간에 상품과 용역을 거래하면서 가격을 부풀리는 등 부정을 저지른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 본사가 한국토요타에 비싸게 차를 넘기면 한국토요타의 이익이 줄어 한국에서 내야 할 법인세도 대폭 감소한다. 국세청은 최근 들어 이 같은 이전가격 조작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

다국적기업 본사와 해외법인 간 이전가격 조작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는 것은 전 세계 과세당국의 공통된 추세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미국 행정부가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지목해 소득의 해외이전 여부와 세원잠식 현황을 면밀하게 조사하는 있는 것으로 알려져 우리 기업들에 ‘과세 비상등’이 켜졌다. 아직은 표면화된 것이 없지만 조만간 ‘한국토요타 세무조사’ 같은 상황이 미국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31일 복수의 고위 경제관료와 재계 단체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한국 다국적기업이 모회사와 자회사 또는 자회사들 간에 상품과 서비스를 부정하게 사고파는 ‘이전가격 조작’ 방식으로 세금을 해외로 유출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강력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트럼프 정부의 고위 경제관료와 만나 얘기했는데 미국 정부가 한국 등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이전가격 조작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우리 기업들도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해외 가운데 특히 미국에서 상당한 매출이 발생하는 국내 기업들 입장에서는 이 같은 미 세무당국의 ‘현미경 잣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 세금을 최대한 적게 낼 목적으로 해외 자회사 또는 본사에 귀속돼야 할 소득을 조세회피처 등의 페이퍼컴퍼니로 이전하는 적극적인 세무설계를 한 기업은 거의 없다. 버뮤다·케이맨제도 등 조세회피처를 통해 세금을 피하는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으로는 ‘구글’이 꼽힌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 역시 해외 사업의 과실을 현지에 쌓아두기보다 본사로 이전하는 가격정책을 편 사례가 많아 미국이 자국의 과세권을 강화할 경우 이전가격에 대한 과세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자동차 등의 해외매출 비중은 70~90%에 이르고 대부분 북미 지역의 매출 비중이 가장 높다.


미국의 경우 법인세 최고세율이 33%로 우리나라의 22%보다 크게 높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미국에서 낼 법인세를 줄이기 위해 한국 내 모회사와의 거래를 부풀리는 방식을 관행적으로 이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의 경우 법인세 과표에서 공제해주기 때문에 그만큼 세금을 줄일 수 있다. 로열티가 대표적이다. 로열티는 무형의 가치라 거래하는 양측이 정하기에 따라 가격이 고무줄처럼 천차만별이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는 “미국이 그동안 거래가격 조정은 어느 정도 묵인해준 게 사실”이라며 “만일 실태조사에 나섰다면 이는 그동안의 관행을 더 이상 묵인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국내 대형 로펌의 한 조세전문 변호사도 “한국의 다국적기업들 역시 해외 지사에서 국내 본사로 소득을 이전할 때 지재권 사용료, 자문료 명목의 로열티로 보내는 것이 세제상 유리해 제일 선호해왔다”며 “과세당국의 잣대가 엄격해지면서 로열티를 부풀려서 보내는 관행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전가격에 대한 과세 강화는 미국만의 추세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2015년 벱스(BEPS·세원잠식 및 소득이전)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와 관련해 과세당국 간 국제적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우리 국세청도 이미 2015년 세법개정으로 이전가격 조작을 방지할 수 있는 통합기업보고서·개별기업보고서 등의 제출을 다국적기업들에 의무화한 상태다. 아시아나 오세아니아 지역 국가들도 자국 세법에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미국은 관세장벽을 강화하고 한국 대기업 공장의 미국 이전을 압박하는 등 ‘미국 우선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미 세무당국의 행보가 다른 나라보다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미국의 압박이 점점 거칠어지는 가운데 LG전자는 이미 미국에 현지공장 건립계획을 밝혔으며 삼성전자도 현지공장 설립을 기정사실화한 상태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관세장벽을 높이는 것과 병행해 미국이 세무조사를 통한 한국 기업 ‘응징’이라는 카드까지 꺼내 든다면 국내 기업들의 경영환경은 더욱 나빠질 게 뻔하다”며 “전 세계 과세당국의 벱스 프로젝트를 비롯해 미국 세무당국의 한국 기업 조사 움직임에 대한 민관의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홍우·나윤석·이태규·서민준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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