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韓 등 대미 무역흑자국 조사] 무역보복 조치 앞서 명분쌓기…반덤핑 조사·제재금 크게 늘듯

美-中 고래싸움에 한국 등 상당수 '등 터진 꼴'
환율 불균형도 조사…결과따라 실질제재 검토
나프타 관세 부활 맞물려 한미FTA도 영향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중국·일본·독일 등 16개국에 대해 무역적자 실태를 조사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하기로 한 것은 무역보복 조치에 앞서 충분히 명분을 축적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막무가내식으로 무슬림 7개국 출신의 미국 입국을 잠정 금지했다가 역풍을 맞고 좌초한 반(反)이민정책의 실패를 보호무역정책에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행정명령을 통해 상무부에 무역적자 실태 조사를 위한 90일의 시간을 부여하는 한편 국가별·상품별로 무역적자가 일어난 원인을 상세히 밝히도록 주문했다. 그 결과에 따라 무역 상대국에 강경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무역 적자국에 대한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한국이 10여 개국에 달하는 조사 대상에 이름을 올린 만큼 이번 조치는 가뜩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압박을 받고 있는 한국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향후 국내 기업 등에 대해 미국의 반덤핑 조사 횟수가 크게 늘고 제재 금액도 확대될 우려가 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는 이번 조사를 통해 모든 교역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요소를 파악하겠다는 입장이다. 무역적자 실태조사 행정명령은 4월6∼7일 개최되는 미중 정상회담을 겨냥한 측면이 적지 않지만 조사 대상국이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을 포함해 16개국으로 광범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미국의 최대 무역 적자국인 중국을 향해 “미국을 착취하면서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고 비난하며 일관되게 중국을 겨냥해 불공정 무역을 주장해왔다. 하지만 중국과의 정면충돌에 따른 부담과 중국 측의 반발을 고려, 16개 무역 적자국으로 조사 대상을 넓히면서 무역보복 조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이 언급한 이번 조사 대상에는 독일·멕시코·아일랜드·베트남·이탈리아·말레이시아·인도·태국·프랑스·스위스·대만·인도네시아·캐나다 등이 포함됐다. 미중 간 고래 싸움에 한국을 비롯해 상당수 국가들이 함께 등 터지는 형국이 된 셈이다.

아울러 로스 상무장관은 ‘환율 불균형’ 문제도 무역적자 실태 조사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혀 환율조작도 실효적인 무역제재의 범위 내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 불균형 문제를 양자 간 협의를 통해 해결해나간다는 방침이어서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을 타깃으로 한 특별청구서가 날아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특히 환율조작이 의심되는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직접 지정하기보다는 미국 기업의 투자를 막거나 연방정부의 상품 및 서비스 계약 기회를 차단하는 등 보다 조용하면서도 실질적인 제재를 가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환율관찰대상국’인 한국이 제재를 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CNBC는 이날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를 인용, 미국 정부가 통화가치 저평가 국가에 대해 전통적 대응책과 다른 형태로 불이익을 가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장이 발표한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 강화 역시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지만 중국과 수출품이 겹치는 철강과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들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바로 위원장은 2001년 이후 28억달러가량의 반덤핑 관세들이 부과되지 않아 미국 기업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반덤핑 조사를 늘려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미국은 현재 340여 개 품목에 대해 반덤핑 및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 중 3분의1 이상은 중국 관련 제품들이지만 국내 기업들의 생산 제품 상당수도 중국이 반덤핑에 나서고 있는 품목들과 겹쳐 함께 조사와 제재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의 연장선에서 외국과 체결한 모든 무역협정을 재검토하려는 움직임도 한국에는 적잖은 부담이다. 로스 상무장관은 다음달 10일 의회가 휴회에 들어가기 전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 절차를 공식 개시하기로 하고 재협상 초안을 마련하면서 멕시코 등과의 교역 물품에 폐지된 관세를 부활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나프타 재협상은 6월부터 멕시코·캐나다와 본격화할 예정으로 그 결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도 상당 부분 준용될 가능성이 높다. /뉴욕=손철 특파원 runin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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