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서울의 미세먼지농도가 같은 날 전 세계 도시 중 두 번째로 높았다는 경악할 만한 사실은 대한민국 역시 에어포칼립스가 현실화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세계 주요 도시의 미세먼지와 일산화탄소 등 오염물질 농도를 측정해 비교하는 다국적 커뮤니티 에어비주얼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오전 한때 서울(179)이 인도 뉴델리(187)에 이어 두 번째로 오염지수가 높았다. 환경부 환경과학원의 조사 결과를 봐도 올 들어 이달 21일까지 전국 각지에 발령된 초미세먼지특보(경보·주의보)는 모두 85차례로 2016년(41회)과 2015년(51회)보다 훨씬 많았다. 각종 호흡기질환은 물론 심혈관질환·피부질환·안구질환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은밀한 살인자’가 어느 때보다 무섭게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피부로 느끼는 소비자들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미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를 경험하면서 누구도 자신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 탓도 크다. 마스크 구매는 기본이고 공기청정기·구강청결제·산소캔·빨래건조기 등을 갖추며 적극적으로 미세먼지에 대처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미세먼지 관련 차별화 상품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관련산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다.
소비자의 경각심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마스크에 대한 인식 변화다. 중세시대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알려진 마스크는 의사가 전염병 환자를 진료할 때 주로 착용했고 이런 배경 때문에 마스크 쓴 사람은 오랜 세월 아픈 사람이나 가까이해서는 안 될 사람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마스크의 이미지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부정적 이미지보다 생필품 혹은 패션 아이템으로까지 생각하는 이들이 늘었다. 실제로 유한킴벌리가 전국 거주 20~40대 여성 1,7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길거리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에 ‘건강을 관리하는 사람’이 41%로 가장 높았다. ‘몸이 아픈 사람’이라고 답한 사람은 절반 수준(23%)에 불과했고 △성형수술·시술을 한 사람(21%)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사람(8%) △별다른 생각이 없음(5%) △유난을 떠는 사람(2%) 순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는 사람들의 일상 풍경까지 바꾸고 있다. 집 밖에서 조깅을 즐기는 대신 실내 헬스장을 다니거나 아이와 밖에 나가 노느니 실내 키즈카페·워터파크 등을 택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각종 모임에서 미세먼지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스위스·캐나다·뉴질랜드 등 자연 선진국의 여행담은 큰 관심을 받는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거주하는 박모(27)씨는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으로 미세먼지 농도부터 살펴보는 게 첫 일과가 됐다”며 “공기가 좋지 않은 날은 바깥 활동을 최대한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가족·친구들과 관련 내용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서초구 내곡동 거주자인 윤모(37)씨는 “주말마다 아들과 캠핑하는 게 삶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는데 올봄에는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아직 어린 아들이 호흡기질환이나 피부질환에 걸릴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세먼지 공포 확산으로 새로운 소비가 증가하고 관련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공기청정기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공기청정기는 3월에 판매가 집중되는 ‘계절 가전’의 형태를 보였지만 이제는 판매량이 연중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사계절 가전’으로 자리 잡았다. 2014년 50만대였던 공기청정기 시장(대여·판매 대수)은 2015년 90만대, 2016년 100만대로 늘었고 2017년에는 14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LG전자·코웨이·대유위니아 등은 이전 시리즈보다 기능을 대폭 강화한 신제품을 잇따라 출시했고 일부 업체는 10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제품들을 선보이면서 블루에어 등 수입 브랜드들과 경쟁하고 있다.
마스크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온라인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21일부터 일주일 동안 미세먼지나 황사 차단에 최적화된 ‘황사 마스크’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배 넘게 팔렸다. 솜뭉치 모양의 필터를 코안에 직접 삽입해 먼지를 차단하는 ‘코 마스크’도 판매량이 3배 가까이 늘었다. 휴대하면서 산소를 흡입할 수 있는 ‘산소캔’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산소캔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배 넘게 늘었다. 미세먼지 배출 및 해독 등에 좋다고 알려진 미나리·브로콜리·배 등도 적게는 49%에서 많게는 107%까지 판매가 늘어났다.
의류건조기·의류관리기 등 국내서 다소 생소했던 가전 판매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미세먼지 때문에 옷을 집밖에 널지 않는 가정이 늘어난 영향으로 올해 국내 의류건조기 시장 규모는 지난해보다 3배 이상 증가한 30만∼4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옷의 먼지를 털고 냄새 등을 없애주는 의류관리기도 효자상품이 됐다. LG전자의 트롬스타일러는 지난 1월 한달간 1만대 넘게 팔리며 월 기준 신기록을 세웠고 지난해 연간 판매량도 전년 대비 60% 이상 늘었다.
화장품 업체들도 ‘미세먼지 마케팅’에 나섰다. 머드팩 성분으로 세안 때 미세먼지를 흡착해내거나 피부를 보송보송하고 매끈하게 만들어 먼지가 덜 달라붙도록 하는 기능을 앞세운 제품이 많다. 에이블씨앤씨가 ‘미샤’에서 내놓은 ‘니어스킨 더스트리스’ 라인은 3월(1∼27일) 매출이 전월 같은 기간 대비 2.8배 늘었다.
미세먼지의 유해성이 심각해지면서 대기관리 환경기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05년 1조5,000억원 규모였던 국내 대기시장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오는 2020년 3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국내 대기관리 업체들은 중국 시장 진출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새로 건립되는 발전소에 탈황·탈질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는데다 산업단지 내에도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설비요건을 강화하는 추세다.
/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