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의 독립영화지만 ‘소시민’은 그래서 황보라에게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최근만 해도 ‘미스터 백’, ‘욱씨남정기’, ‘불어라 미풍아’까지 연이어 발랄하고 도도한 20대 여성을 연기해온 황보라에게 그동안 관객들에게 보여준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배우 황보라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오훈 기자
‘소시민’에서 황보라는 아내에게는 이혼을, 회사에서는 해고를 당할 위기에 처하며 하룻밤 사이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는 재필(한성천 분)의 여동생 ‘재숙’을 연기한다. ‘재숙’은 현재는 회사를 그만 뒀지만 전직 사회부 기자 출신이라는 커리어를 지닌 인물이다.
황보라가 ‘소시민’에 합류한 과정은 독특했다. 대개는 감독이 배우를 선택하기 마련이지만, 황보라의 경우 먼저 ‘소시민’의 시나리오를 구해서 읽은 후, 직접 김병천 감독에게 출연을 부탁해 성사된 케이스다.
“회사를 옮기면서 연기를 잠시 쉬고 있을 때 ‘소시민’ 시나리오를 구해서 읽게 됐어요. 저한테 들어온 작품은 아니지만 너무 출연하고 싶어서 감독님에게 연락을 드렸고, 감독님이 부산에 계시다고해서 바로 KTX를 타고 부산에 가서 감독님을 만나게 됐죠. 그만큼 연기를 하고 싶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경으로 내려갔어요.”
배우 황보라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오훈 기자
사실 ‘소시민’에서 황보라가 연기한 ‘재숙’의 캐릭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전직 ‘사회부 기자’라는 캐릭터로 인해 오빠인 ‘재필’이 처하는 하룻밤의 소동에서 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었지만, 정작 ‘재숙’은 ‘재필’이 처하는 하룻밤의 소동에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마지막 순간 해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팔려는 오빠에게 살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사회부 기자’라는 캐릭터는 좀 아깝게 느껴진다.
캐릭터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소시민’은 황보라라는 배우에게는 의미 있는 작품이 됐다. 황보라하면 떠오르는 발랄하고 도도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연기를 관객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소시민’에서 황보라가 등장하는 첫 장면을 봐도 이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아침에 일어난 ‘재숙’은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다가 남편과 사소한 일로 부딪힌다. 평소 드라마에서 익숙한 황보라의 이미지라면 하이톤의 목소리로 투닥투닥 말다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지만, 이 순간 ‘재숙’은 목소리의 톤을 낮추며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지금까지의 황보라에게 미는 것만 있었다면 이제는 ‘밀고 당기기’가 보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밝고 개성있는 이미지가 배우로서 부담이 많이 됐고 그런 역할을 안 하려고 하다보니 작품이 안 들어온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제가 가진 그런 이미지를 꾸준히 가져가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도 있었던 것이었죠. ‘소시민’처럼요. ‘소시민’을 하면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나를 내려놓고 어떤 작품이든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배우 황보라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 오훈 기자
‘소시민’을 촬영하면서 황보라는 다시 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소시민’을 촬영하면서 동시에 드라마 ‘미스터 백’이 들어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촬영을 했고, ‘소시민’을 마친 후에는 영화 ‘더 폰’과 드라마 ‘욱씨남정기’, ‘불어라 미풍아’로 바쁘게 촬영장을 오갔다. ‘소시민’으로 인해 배우로서 가졌던 고민과 부담을 한결 내려둔 것이 황보라를 다시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서게 한 힘이 됐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 동안 제가 정확히 제 모습을 바라보고 인정하지 않고 무작정 탈피하려고만 한 것 같아요. 그동안 20대 역할을 많이 해서 젊게 봐주시는데 저도 벌써 30대거든요. 이제는 제 모습을 지키고 새로운 모습을 찾으며 제 나이에 맞는 모습이 잘 묻어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서경스타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