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설자리 잃는 감평사

공시업무 한국감정원으로 이관에
단독주택공시 업무도 넘어갈 예정
공적 역할 축소 영향 수익원 줄어
"대다수 감평법인 현실에 안주
사업영역 확대 소극적" 지적도

감정평가업계가 공적 역할이 축소되고 업무영역 확대가 막힌 답답한 상황을 좀처럼 풀지 못하고 있다. 감정평가법인들의 매출은 크게 담보평가·공시업무·보상평가·경매쟁송·국공유재산 매입매각 등 다섯 가지로 구성된다. 이 중 공적 기능이 강했던 공시업무의 경우 한국감정원으로 역할이 이관되면서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대다수의 법인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확대에 소극적이라 좀처럼 신규 수익원을 창출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2일 한국감정평가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감정평가업계 전체 수수료 수익 7,600억원 중 공시업무의 비중은 12.7%로, 2010년(20.3%)에 비해 크게 줄었다. 한때 감평법인의 주 수익원이었던 공시업무의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그간 감정평가사들이 맡았던 업무를 한국감정원이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은 지난 2012년부터 기존에 감평사들이 하던 월·분기 단위 지가, 상업용 부동산 동향 조사를 맡아서 하고 있다. 수수료 금액으로 따지면 약 300억원 수준이다.

올해부터는 300억~400억원에 달하는 단독주택공시 업무까지 한국감정원이 맡을 예정이라 공시업무 비중은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감평사를 공시업무하는 사람으로 여길 정도로 그 비중이 컸지만 감정원이 감평사들이 해야 할 업무를 모두 가져가면서 감평사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적 역할이 줄어들면서 감평사들이 치열한 시장 경쟁에 내몰리다 보니 부작용도 크다. 고무줄 감정평가 논란이 대표적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4년 한남더힐에 대해 공정성과 객관성이 결여된 감정평가로 물의를 일으킨 감평사에 대해 최대 1년 2개월의 업무 정지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감평사들은 한남더힐 600가구에 대해 평형별로 153~274%의 감평가 차이를 발생시켜 세입자와 시행사의 갈등을 부추겼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 감평사는 “수수료 체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최저가 수수료를 제시하기 때문에 의뢰인이 원하는 감정평가액으로 수주 경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며 “감평사들이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무영역 확대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최근 부동산 서비스 산업 육성 필요성이 커지면서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 집단인 감평사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적극적으로 사업 영역 확대를 추진하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프라임감정평가법인의 경우 지난 2008년 글로벌 부동산컨설팅사인 DTZ와 제휴해 감정평가 업무뿐만 아니라 대형 부동산 매각 및 매입 자문, 컨설팅 등의 업무로까지 영역을 확대했으며, 지난해 DTZ와 제휴와 끊긴 후에는 미국 보스턴 기반의 컨설팅사 SVN과 제휴를 맺었다.

또 작년에 글로벌컨설팅사인 컬리어스인터내셔널코리아는 메이트플러스감정평가법인을 설립하면서 김정민 감평사를 대표로 영입했다. 김 대표는 “컬리어스의 주 업무인 매입 및 매각 자문, 임대차 대행, 컨설팅 등의 업무에 감평사의 주 업무인 가치평가를 결합하면 다양한 형태로 시너지가 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대다수의 감평법인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감평사에 대한 평가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 대다수의 감평사들은 먹고 살만한 수준”이라며 “그러다 보니 적극적으로 기존 틀을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