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69주년 추념식 “당시 학살 사망자가 무려 14,043명”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
우리나라 현대사 비극 중 하나인 제주 4.3사건이 69주년 추념식을 진행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봉기 사태와 그로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이 바로 제주 4.3사건이다.
제주 4.3사건 사망자는 1만 4,043명으로 집계됐지만,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학살이 계속된 점으로 미뤄 3만 명 규모로 전해진다.
제주 4.3사건은 대통령 기록물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때 당시 ‘서북청년단’이라는 극우 보수단체가 군과 경찰에 편입됐으며 미국에서는 ‘레드 헌터(Red Hunter-빨갱이 사냥꾼)’이라 명명했다.
이승만 대통령 국무회의록에는 “미국 측에서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동정을 표하나 제주도, 전남 사건의 여파를 완전히 발근색원하여야 그들의 원조는 적극화할 것이며 지방 토색 반도 및 절도 등 악당을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하여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고 대통령 발언이 쓰여있다.
이같은 이승만 대통령의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부를 대변해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에 따르면, 당시는 미군정의 무능함에 대한 불만이 퍼지던 분위기였다.
광복 이후 남한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해 5.10 총선을 저지하고 통일국가를 세우기 위해 1948년 4월 3일 남로당·제주도당 등 350여 명이 무장하고 제주도 내 12개 경찰지서를 급습하면서 시작됐다.
제주도민들의 당시 반감, 공포가 부딪혀 양측의 대립이 시작됐으며 이 다툼은 한국 전쟁 내내 계속됐다.
[사진=방송화면 캡처]
/박재영기자 pjy0028@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