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우리 기업의 이란 투자 금액은 지난해 4만5,000달러(약 5,000만원)로 외제차 한 대 값도 안 됐다. 2015년 ‘0’원에서 늘기는 했지만 요란했던 선전에 비하면 초라했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신시장 개척, 수출 이외의 해외 시장 진출에는 소극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 전 대통령이 2015년부터 2년 연속 정상회담을 하고 중국을 제치고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떠오른 인도 공략도 저조했다. 지난해 투자액은 3억 417만달러(약 3,402억원)로 전년보다 오히려 2.7% 감소했다. 인구가 10억 명이 넘어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역시 지난해 1억4,900만달러(약 1,667억원)를 투자해 전년과 비슷했고 2014년(3억1,900만달러)의 절반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신산업 진출 면에서도 ‘우물 안’에 갇혀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등에 따르면 빅데이터 기술 수준은 미국이 100점이라면 한국은 77.9점에 그쳤다. 일본(87.7점), 유럽연합(EU·88.9점)에 10점 이상 뒤졌다. 사물인터넷(IoT)은 80.9점, 인공지능(AI)은 70.5점이었다. 특히 AI는 중국(66.1점)과 약 4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수도 2월 현재 한국은 3개(쿠팡·옐로모바일·CJ게임즈)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99개, 중국은 42개에 달했다.
기업이 도전을 꺼리는 이유는 뭘까. 가장 재미있는 분석은 ‘재벌 3세’ 경영 체제로 진입하며 기업가 정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견기업의 한 상무는 “주요 기업 대부분이 창업주의 손자·손녀 세대가 경영권을 쥐면서 새로운 것을 개척하기보다 선대가 이룩해놓은 것을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새로운 사업을 안 해도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므로 도전을 꺼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도 문제다. 김보경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최근 심야버스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콜버스’, 온라인 자동차 경매 ‘헤이딜러’ 등의 스타트업이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규제가 적용되며 위기를 겪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의 아마추어적인 지원도 개선해야 할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한·이란 정상회담에서 건설 수주와 관련해 여러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다고 발표됐는데 이후 중국에 상당부분을 빼앗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MOU 발표 이후 중국 기업들이 소식을 접하고 더 싼 가격에 사업을 제안해 가로채 갔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조용히 일을 진행하면 될 것을 정상회담 성과를 선전하기 위해 요란하게 하는 바람에 생긴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회는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동기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의 경영권 규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편인데 국회에서는 상법 개정으로 이를 더욱 옥죄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빠른 의사결정을 막아 신시장·신산업 개척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새로운 산업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는 계속해서 저성장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연구위원은 “기업이 신사업 진행에 앞서 정부에 법 해석을 의뢰하면 정부가 처음에는 ‘불법이 아니다’라며 허가하다가 기업이 만일에 대비해 공문을 요구하면 그때 가서 하지 말라고 돌변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지난 정부에서 규제 체계를 모든 것을 허용하되 일부 금지하는 것만 열거하는 ‘네거티브’로 바꾼다고 했지만 이렇다 할 변화가 보이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확실한 전환을 촉구했다. /세종=이태규·서민준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