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으로 이미 목표치에 도달한 국가들이 늘고 있는데다 이미 금리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황에서 만에 하나 닥칠 수 있는 경기둔화에 대비하려면 물가를 끌어올려서라도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이 중앙은행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WSJ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 목표 수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며 “당분간 또는 영구적으로 물가상승률 2% 상회를 허용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지난달 통화정책회의에서 “일시적으로 2%보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허용할 수 있다”며 물가 밴드를 넓히는 ‘대칭적 물가목표’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바 있다. 이 밖에 스웨덴은 목표치를 기존 2%보다 상향 또는 하향하는 것을 모두 허용하는 방안을 숙고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캐나다는 5년마다 인플레이션 목표를 공식적으로 재평가하는 정책을 이미 실시하고 있다.
중앙은행들이 금융위기 이후 도입한 ‘2% 목표’를 재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주요국 경기가 잇달아 목표치에 도달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미국은 2012년에 2% 목표를 설정한 후 처음으로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이 전년동월 비 2.1%를 기록하며 기준선을 넘어섰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도 지난 2월 CPI 상승률이 2%를 넘어섰다. 일본의 물가수준은 아직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치지만 올 들어 2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떨치고 있다.
향후 경기악화 등 제반 문제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면 보다 광범위한 물가 타깃이 필요하다는 데 중앙은행들이 동의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목표 수정 논의의 배경이다.
지금까지 중앙은행들은 주로 단기금리를 조정해 인플레이션 발발 등 경제 문제에 대처해왔다. 물가가 급속히 오르는 등 경기가 과열되면 단기금리를 올려 시중의 돈을 흡수하고 물가가 떨어지고 경기가 둔화하면 금리를 낮춰 시중에 돈을 푸는 식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준금리가 ‘제로’에 육박하거나 아예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만일 또다시 경기가 악화한다면 물가목표를 그대로 둔 채 금리조절만으로 경기를 부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목표물가를 인상하면 시중 금리도 동반 상승한다는 점을 들어 초저금리 시대에 경제운용 여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목표물가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 연준의 마이클 킬리 이코노미스트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지지하지는 않지만 금융위기 이후의 경기회복 국면에서는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당분간 미국이 2%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율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올리비에 블랑샤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2010년부터 ‘4% 목표’를 제시해 관련 논의에 불을 댕긴 바 있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