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기후변화협약이 발효된 후 세계 각국이 저탄소 녹색성장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치열한 ‘그린레이스(green race)’를 펼치고 있다.
유럽과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앞선 기술력과 자본으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온실가스 감축과 일자리 창출의 핵심 수단으로 인식하고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가장 주목할 만한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 분야에 지난 한 해에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1,200억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2위인 미국(560억달러)보다 두 배가량 많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처음으로 세계 신재생에너지가 석탄을 앞질러 최대 발전원이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신재생에너지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그린레이스에 불을 댕긴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10년간 청정에너지원 개발에 2,000억달러를 투입해 500만개의 ‘녹색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영국 정부도 최근 100억파운드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투자 계획을 공개했다. 전기자동차와 풍력·조력 등 친환경 프로젝트와 디지털 기술 개발 등을 추진해 그린에너지 분야에서 1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방침이다. 독일 역시 환경보호 분야에 55억유로를 투입하는 동시에 500억유로 규모의 경기부양책 중 일부를 신재생에너지 투자에 사용하기로 했다. 일본이라고 빠질까. 일본은 ‘녹색경제와 사회변혁’이라는 일본판 뉴딜 정책을 제시했다. 일본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280만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환경 관련 시장을 120조엔대로 성장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김희집 서울대 교수는 “파리협약을 계기로 화석연료 시대의 쇠퇴가 불가피해졌다”며 “기후변화 대응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 에너지 안보 증대 등을 고려할 때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투자 규모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이 좋아지면서 저탄소 에너지 경제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조건은 만들어졌다. 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 화석연료의 생산비용과 신재생에너지 생산비용이 같아지는 ‘그리드패리티(grid parity)’에 접근했다. 자원 고갈에 의한 화석연료 생산비용 상승과 기술 개발에 의한 신재생에너지 생산비용의 하락 덕분이다. 이렇게 되면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앞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백철우 덕성여대 교수는 “그린레이스가 가속화되면서 세계 신재생에너지 시장은 지난 5년간 연평균 28.2% 성장해 2015년에는 4,000억달러 규모로 커졌다”며 “2020년께는 현재 자동차 산업 규모에 육박하는 1조달러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설치된 신규 발전설비의 절반 이상이 신재생에너지 설비였다는 점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블룸버그의 신재생에너지 전망에 따르면 2040년에는 현재보다 풍력은 41%, 태양광은 60%나 단가가 떨어져 2020년에는 주요 국가에서 풍력과 태양광이 가장 값싼 발전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서 2040년에는 전체 전력생산량의 60%를 신재생에너지가 담당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린레이스는 산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에코노믹스(eco-nomics)’가 새로운 산업과 시대의 흐름으로 떠올랐다. 글로벌 석유회사들은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해 화석연료 사업에서 탈피해 청정에너지 분야로 사업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프랑스 토탈사는 2011년 태양광 모듈 업체인 선파워사를 인수했다. 최근에는 배터리 회사인 샤프트를 11억달러에 인수해 태양광과 풍력에서 나오는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전력 산업을 추진 중이다. 영국의 BP사도 탈석유 전략을 수립하고 대체에너지사업부를 신설했다. 유럽의 최대 석유회사인 쉘사도 신재생·저탄소 분야에 투자하기 위해 신에너지사업부를 만들었다.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는 2040년까지 54GW 규모의 태양광발전을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14억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이성규 박사는 “글로벌 석유회사들이 청정에너지 회사로 탈바꿈하려는 것은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그만큼 각광을 받는다는 방증”이라며 “우리 기업들도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한 투자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세종=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