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기업하기 힘든 나라

오철수 논설위원
일자리 위해 규제완화·稅 감면
다른 나라들은 안간힘 쓰는데
우리만 기업 압박하는 정책 남발
투자 늘릴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자동차를 비롯해 더 많은 공장을 짓기 위한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메리, 당신도 예외는 아닙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나흘째인 지난 1월24일 미국 자동차 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모았다. 이 자리에는 메리 배라 제너럴모터스(GM) CEO와 마크 필즈 포드 CEO, 세르조 마르키온네 피아트크라이슬러 CEO 등 빅3 업체 대표들이 모두 모였다. 여기서 트럼프는 해외에 있는 자동차 생산시설을 국내로 이전하라고 압박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일자리 창출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트럼프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기업들을 닦달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트럼프는 이렇게 돌아오는 기업들을 위해 규제 완화와 법인세 감면 등 당근도 제시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규제개혁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을 시작으로 취임 후 6주 동안 모두 90개의 규제를 폐지하거나 연기시켰다. 특히 규제 하나를 새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존 규제 두 개를 폐지하는 규제비용총량제 도입을 통해 전체 규제의 75%를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는 현재 35%인 법인세를 15~20%로 낮추기 위해 세제개편 작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트럼프의 일자리 만들기 정책은 경기지표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의 취업자수는 23만5,000명이 늘어나면서 시장 예상치를 훌쩍 넘었다. 제조업이 부활하면서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는 것이다. 성장률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해 4·4분기 미국의 성장률은 0.5%로 2분기 연속으로 한국을 앞질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당초 2.3%로 제시했던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0.1%포인트 올려 잡았다. 이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미국의 성장률은 한국(2.6%)을 앞지를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국이 점진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한미 간 금리 역전도 시간문제다.

경기 호조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유럽과 일본·중국 등 다른 나라들도 확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3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6.2로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중국도 51.8로 2012년 4월 이후 가장 높다. 글로벌 경기가 완연한 봄을 맞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3월 우리나라의 제조업 PMI는 48.4로 8개월 연속으로 기준치를 밑돌고 있다.

글로벌 경기는 살아나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온갖 규제 속에 기업인을 범죄인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 영향이 크다. 현재 삼성과 롯데·SK 등 주요 기업들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여기에 대선주자들은 근로시간 단축과 법인세 인상 등 글로벌 추세에 역행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앞다퉈 추진하면서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의 사활이 걸려 있는 4차 산업혁명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지금 우리나라를 둘러싼 경제 여건은 매우 좋지 않다. 북한의 핵 도발을 둘러싸고 미국이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고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와 관련해 경제보복의 고삐를 죄고 있다. 여기에 정치인들마저 기업을 지원하기는커녕 되레 압박하고 있으니 성장도 일자리 창출도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 정치인과 관료들이 진정 경제살리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관심이 있다면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의 경고를 곰곰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시장 지향적이고 민간 오너십을 지원하는 나라에서는 경제가 발전하지만 기업가 정신을 억압하는 나라에서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쇠락한다.” 오철수 논설위원/csoh@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