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도(가운데) KAIST 생명과학과 교수가 실험연구를 도와준 학생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허원도 교수
칼슘이온(Ca2+)은 신경 전달물질의 분비나 근육 수축의 이완, 혈액 응고 등 거의 모든 생명현상에 관여한다. 심장근육이 뛰는 데도 꼭 필요한 성분이라 세포 내 칼슘이온이 부족해지면 심장부정맥 등 치명적인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와 같은 인지장애나 운동실조 등과 같은 질환도 마찬가지다. 의과학계는 세포 내 적정 칼슘이온 농도를 조절하는 약물 개발 등에 힘써왔지만 문제 부위에만 칼슘이온을 주입하기 어렵다는 등 현실적인 한계에 부닥쳤다. 독성과 부작용이 강해 실험실 내에서만 가능할 뿐 인체 적용까지는 힘든 기술도 많았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과 서울경제신문이 공동 주관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인’ 4월 수상자로 선정된 허원도 KAIST 생명과학과 교수가 개발한 ‘생체 내 칼슘이온 제어기술’은 이런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생체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는 동시에 정밀한 제어를 구현하기 위해 허 교수가 택한 도구는 바로 ‘빛’이다.
허원도 교수팀은 청색광에 반응해 복합체를 형성하는 식물의 단백질과 인간의 칼슘 채널 활성화 단백질을 결합시킴으로써 청색광을 쬐었을 때 복합체를 형성, 세포막의 칼슘 채널을 활성화시키는 융합 단백질을 개발했다(그림 왼쪽). 실제 이 단백질을 적용한 세포에 청색광을 쪼이면 칼슘 농도가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오른쪽).
허 교수팀은 빛에 반응해 복합체(cluster)를 이루는 식물의 단백질을 복합체를 이뤘을 때만 활성화하는 인간(동물 세포)의 칼슘이온 채널 단백질과 융합시켜 빛을 쪼일 때 칼슘이온이 세포 안으로 흘러들 수 있게 했다. 허 교수는 “오직 칼슘이온만 들어올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융합 단백질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빛의 세기와 비추는 시간을 원격 제어함으로써 생체 내 유입되는 칼슘농도의 양과 잔류시간 등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자신했다.허 교수팀은 이렇게 개발한 ‘광 유도 칼슘이온 채널 활성화(OptoSTIM1) 기술’을 인간배아줄기세포와 제브라피시 등에 각각 적용해 빛 자극으로 칼슘이온의 유입을 활성화하는 일련의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특히 뇌 속 해마 부위에 빛을 비춰 쥐의 단기 기억력을 향상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증명한 실험이 크게 주목받았다. 빛을 쬔 쥐는 그렇지 않은 쥐보다 전기 충격을 받았던 특정 공간에 대한 공포가 2배 증가했다는 사실이 실험 결과 확인됐다. 연구 결과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진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로지의 2015년 10월호 표지논문으로 게재됐다.
허 교수가 개발한 원천기술의 특장점은 빛의 강도와 노출시간에 따라 세포 내 유입되는 칼슘의 농도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칼슘이온과 관련된 여러 생명현상은 물론 관련 질환의 원인규명에 활용할 수 있으며 대량 화합물 중 칼슘이온 농도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을 찾아내는 신약 개발 플랫폼으로도 쓰일 수 있다. 빛을 쐬는 것 자체로 질병을 치료하는 길도 언젠가는 열릴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칼슘이온을 통해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세포 전이를 방지하는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넘쳐난다. 물론 실제 인간에게 적용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벽이 많다.
허 교수는 “우선 빛을 비침습적으로 뇌 조직에 전달할 수 있도록 광유전학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며 “20년쯤 후에는 적외선이 소형화한 광원을 이용해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치매 환자나 칼슘이온 대사에 문제가 있는 환자를 직접 치료할 가능성도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밖에도 광유전학 분야에서 허 교수팀이 이룬 성과는 눈부시다. 연구팀이 개발해 2014년 ‘네이처 메소드’지를 통해 발표한 ‘광 유도 분자 올가미’ 기술은 식물의 광합성 단백질과 결합 단백질을 융합, 빛을 비출 때 본래 세포가 자발적으로 만들지 않는 단백질 복합체(올가미)를 형성함으로써 원하는 단백질이 기능하지 못하게 가둬두는 기술이다. 이론적으로는 암세포 분열을 막을 수 있어 암치료 연구 등에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빛으로 뇌 신경세포를 분화·성장하도록 유도하거나 특정 움직임 혹은 신호전달을 원격 조종하는 원천기술도 다수 개발했다. 물론 현재도 빛을 이용해 생체 기능을 조절할 수 있는 신종 단백질 발굴과 적용·제어 기술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허 교수는 “현재 뇌 과학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광유전학 기술은 ‘채널로돕신’ 단백질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이 단백질의 경우 다양한 양이온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어 정밀하지 못하고 효율이 낮은 편”이라며 “생체 연구에 가장 적합한 빛을 가장 잘 활용하기 위한 원천기술을 다수 개발해 10년 뒤에는 우리가 개발한 단백질과 기술이 연구의 기준이 될 수 있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