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뒷줄 오른쪽 네번째) 현대엘리베이터 디자인연구소 주임디자이너가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 올려진 뮤지컬 ‘그것은 사랑’에서 배우로 나와 동료 배우들과 열정적인 모습으로 공연을 펼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엘리베이터
김태훈(뒷줄 오른쪽 네번째) 현대엘리베이터 디자인연구소 주임디자이너가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올려진 뮤지컬 <그것이 사랑> 배우로 나와 동료 배우들과 열정적인 모습으로 공연을 펼치고 있다./사진제공=현대엘리베이터
‘덕업일치(특정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와 직업을 뜻하는 ‘업’을 합성한 신조어로 취미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을 의미)’까지는 꿈도 안 꾼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만의 탈출구 하나 만드는 것은 모든 월급쟁이의 소망이다.
‘덕(오타쿠를 뜻하는 ‘덕후’의 줄임말)’과 ‘업(業)’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본업과 취미를 병행하며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직장인이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6일 만난 김태훈(35·사진) 현대엘리베이터 디자인연구소 주임디자이너가 주인공이다.
“스물다섯 살 때 뮤지컬 ‘캣츠’를 보고 뮤지컬의 매력에 빠진 후 도전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만 있었어요. 너무 막막한 꿈이어서 머릿속에만 있었죠. 그러다 지난해 우연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김 디자이너는 지난해 10월 우연히 극단 블로그를 둘러보다가 알게 된 ‘the열정Musical’이라는 뮤지컬 동호회의 오디션에 지원했다. 아마추어 뮤지컬 배우를 뽑는 오디션이었지만 경쟁은 치열했다. 입사지원자의 간절한 마음으로 오디션에 임했다는 김 연구원은 7대1의 경쟁률을 뚫고 뮤지컬 배우로 캐스팅됐다.
그는 5개월여간 연기와 발성·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우며 뮤지컬 공연을 준비했다. 그리고 지난달 4~5일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그것은 사랑’이라는 작품으로 데뷔 무대를 치렀다.
“모든 직장인의 생활 패턴이 비슷해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어떤 날은 야근하고 집에 와 쉬고. 그러는 사이 자신의 ‘꿈’은 어느새 잊어요. 취미는 나의 꿈을 잃지 않게 해주는 활동 같아요.”
이런 그의 ‘덕질’은 본업인 엘리베이터 디자인 업무에도 튀는 아이디어로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난달 현대엘리베이터에 전 세계 승강기 업계 최초로 ‘iF디자인 어워드’ 금상의 영예를 안긴 ‘ANYVATOR’의 콘셉트도 바로 입사 9년 차 김 디자이너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ANYVATOR는 ‘모두’를 뜻하는 ‘애니원(anyone)’과 ‘엘리베이터(elevator)’의 합성어다. 엘리베이터 내부에 멀티터치 기능이 적용된 초대형 디스플레이를 설치해 어느 곳에서든 목적한 층을 누를 수 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나 키가 작은 어린이도 제약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콘셉트다.
‘철판으로 이뤄진 좁은 공간에서 올라가는 층을 누르는 것’이라는 엘리베이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보자는 것이 발단이었다. ‘엘리베이터 벽면을 대형 스마트폰처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탄생한 것이 ANYVATOR다. 김 디자이너는 스마트폰처럼 모두가 불편함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편안한 엘리베이터를 디자인하는 것이 목표다.
“미적 요소가 많이 들어간 디자인을 가장 좋은 디자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환경과 약자에 대한 배려까지 고려한 디자인이 가장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ANYVATOR를 시작으로 더 인간 친화적인 디자인을 해보고 싶습니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