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와 무늬’는 주인공 하경이 어린 시절 죽은 줄로 알았던 언니에 대한 기억을 되찾은 후 언니가 어떤 과정으로 죽음에 이르렀는지 추적해나가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책이 나온지 12년이나 흘렀지만 등단 전부터 남겨뒀던 문장의 파편들이 낡은 플로피 디스켓 속에, 또 원고지에 남아있었다. 최영미는 지난 겨울부터 이를 복원해 내용을 보강했다.
그의 첫 장편소설만큼이나 문학인 최영미는 오랜 세월 은둔했다. 은둔이 길어지니 고립이 되고 망각이 됐다. 문단 활동도 활발하지 않았고 다른 문인들처럼 한 출판사의 관리를 꾸준히 받지 못했다. 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를 읽지 않는 이들마저 알 정도로 유명한 시집이지만 그 덕에 첫 시집에 갇혀 근 30년을 살았다.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최영미는 첫 시집이 너무 성공한 탓에 문학 외적인 풍문에 휩싸여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불행한 시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 사태에 분노했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이름이 없는 현실에 부끄러움도 느꼈다. 최영미는 “내가 얼마나 경쟁력 없는 작가가 됐으면”하고 탄식하더니 “이제는 내 목소리도 좀 내고 살아야겠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최 시인이 저소득층을 위한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이 됐다는 소식은 출판계 큰 이슈 중 하나였다. 첫 시집을 무려 52쇄를 찍은 시인의 사연으로는 믿기 어려웠던 탓이다. 그러나 최영미는 오히려 자신의 생활고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 일을 겪고 나서 사람들이 얼마나 풍요롭게 사는지 알게 됐어요. 내가 더 놀란 건 그렇게 풍요로운데도 1만원도 안 하는 시집 한 권 사보지 않는다는 현실이죠. 그거 꼭 써줘요. 나 충격받았다고.” 수다쟁이 소녀 같던 최영미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해졌다.
그의 소설 속에는 “감추고 싶었던 흉터가 지금은 뭇 얼굴들 속에서 번쩍, 나를 알아보는 무늬가 되었다. 어디에서건 나를 드러내는 서명처럼”이라는 표현이 있다. 최영미의 흉터는 무늬가 되었을까. “우리 조카가 10년 전에 그러더라고요. 줄기세포로 나랑 똑 같은 사람을 만들면 나랑 복제인간은 어떻게 구분하느냐 묻더니. 자기가 답을 해요. 흉터는 복제 못하지 않느냐고. 그때 무릎을 딱 쳤죠. 흉터가 있어서 나구나.”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