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 다시 국가개조다] 기업 원하는 인재 못키우는 대학...인력 미스매치가 성장 갉아먹어

<9> 인재양성 틀을 바꿔라
인력수요·교육 불일치
OECD 24개국 중 최고
관련 비용도 GDP 1%
대학 구조조정 하려면
단순 숫자줄이기 아닌
커리큘럼 위주로 가야

미국 보스턴 근교의 소도시 니덤에 있는 프랭클린W올린공대는 지난 2002년에 개교한 신생 공과대학이다. 전교생은 300명 남짓. 하지만 위상은 매사추세츠공대(MIT)나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등에 못지않다. 이 대학의 비법은 ‘무(無)학과’ 운영에 있다. 5년 계약직의 교수도 커리큘럼을 5년마다 한 번씩 바꾼다. 대신 ‘엔지니어링을 위한 시니어 컨설팅 프로그램(SCOPE)’이라는 독특한 커리큘럼이 있다. 기업 등 고객이 의뢰한 문제를 5~6명이 팀을 이뤄 풀어내는 과목이다. 실제 이들의 결과물을 기업이 상용화하기도 했다. 발 빠르게 변하는 산업계의 수요와 기술혁신에 발맞춰 가겠다는 대학의 철학이 그대로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대학이 있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2014년부터 개설한 학부과정을 단일 학부의 무학과로 운영한다. 국내에서는 첫 시도다. ‘학부생 공동연구 프로그램(UGRP)’도 일반 대학의 커리큘럼과 다르다. 주제별로 5명 안팎의 그룹을 꾸려 연구를 하는 과목이다. 이 같은 실험이 가능한 것은 DGIST가 고등교육법이라는 규제의 틀 바깥에 있는 특수대학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일반대학에서 이 같은 창의적 인재육성 커리큘럼 도입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산업의 수요와 대학의 교육이 맞지 않는 인력 미스매치는 우리나라 교육의 고질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인력 미스매치의 원인과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교육·현장 미스매치 정도는 50%다. 둘 중 한 명은 전공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자리를 구한다는 뜻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어떨까. 창의적 교육의 대명사로 불리는 핀란드의 경우 22.8%에 불과하다. 이 비율이 20~30%대인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압도적으로 1위였다. 보고서가 이 비율을 추산한 24개 국가의 평균도 39.1%에 불과했다.


교육과 실제 노동시장에서의 격차도 컸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4년에서 오는 2024년까지 공학 분야의 인력부족은 21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사회과학(21만7,000명), 사범(12만명), 인문(10만1,000명), 자연과학(5만6,000명) 영역에서는 인력이 크게 남아돈다.

이 때문에 지불하는 비용도 막대하다. OECD 보고서는 2012년 기준 인력 미스매치로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불필요한 비용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1.02%로 추산했다. 2012년 GDP(명목기준 1,377조4,567억원)를 감안하면 14조500억원에 달한다. OECD 24개 국가의 평균은 0.47%였다. 쉽게 말해 교육개혁을 통해 인력수급의 불균형을 OECD 국가 평균으로만 낮춰도 성장률을 0.5%포인트가량 올릴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대학 구조개혁의 방점이 잘못 찍혀 있다는 점이다. 2020년 우리나라 대학에 입학하려는 이들의 숫자는 47만1,000명가량이다. 하지만 올해 기준 우리나라 대학의 입학정원은 50만3,000명. 3년이 지나면 입학 정원이 수요를 앞지르는 본격적인 대학 ‘공급과잉’ 시대에 접어든다. 올 3월 정부가 2023년까지 대학 정원을 40만명 수준까지 줄이겠다는 구조조정책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이 단순히 숫자만 줄이는 ‘솎아내기’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금 대학 구조조정은 학령인구가 줄어드니까 등급을 나눠서 등급이 낮으면 퇴출시키는 구조”라며 “대학의 수요가 굳이 고등학교 졸업생일 필요는 없다. 고교 졸업생과 사회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입학할 수 있도록 입시를 이원화 또는 다원화해야 하고 중년들도 재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커리큘럼이 대학교육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원과 등록금 규제의 칼을 든 정부가 뒤로 빠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학이 여러 실험을 하면 수요자가 이를 선택하면서 자연스레 옥석이 가려지는 구조조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원과 등록금의 이중규제를 완화해 정부 평가가 아닌 학생의 선택에 따른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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