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크레타
4년째 긴 동면에 들어갔던 러시아 자동차 시장이 올 들어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지난 1·4분기에 4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기준 판매량이 증가세로 돌아섰다. 시장 회복세와 적극적인 신차 출시로 현대·기아자동차도 판매량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모처럼 활짝 웃었다. 11일 유럽기업인협회(AEB)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지난 달에 각각 1만4,219대와 1만4,614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29%와 18% 급증했다. 양사를 합친 판매량은 총 2만8,83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3,343대)에 비해 23.5%나 늘었다. 지난 달 ‘G80’을 현지에 출시한 제네시스 브랜드도 182대를 팔았다.
현대·기아차의 지난 달 판매 증가세는 러시아 자동차 시장 평균 성장률을 크게 웃돈다. 3월 러시아 자동차 내수 판매량은 13만7,894대로 전년 동기 대비 9.4% 늘었다.
특히 양사를 합친 월 판매량이 전년 대비 증가한 것은 무려 18개월 만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2015년 9월에 총 3만1,202대를 팔아 전년 대비 4.4% 늘어난 실적을 올린 후 지난 2월까지 줄곧 역신장세를 기록했다.
3월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현대·기아차의 1·4분기 판매량도 3년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현대차(3만304대)와 기아차(3만7,310대)는 올 1· 4분기에 총 6만7,614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8.3% 늘었다. 양사를 합쳐 1·4분기 판매량이 전년 대비 플러스를 기록한 것은 2014년 1·4분기 이후 3년만이다.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2012년 293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유가 하락으로 인한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해 지난해까지 143만대로 4년만에 반토막났다. GM 등 글로벌 업체들이 철수하는 상황에서도 현대·기아차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거점으로 신차를 꾸준히 투입했으나 판매량이 3년째 뒷걸음질쳤다. 2013년 38만대이던 판매량이 지난해 29만5,000대로 22%가량 줄었으나 같은 기간 러시아 시장 전체 감소세에 비하면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양사 합산 시장 점유율도 20%대 초반까지 올랐다.
기아차 리오
현대·기아차의 러시아 판매 증가는 꾸준한 신차 출시가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가 지난해 8월 러시아 시장에 투입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크레타’는 5개월만에 2만1,929대가 팔려 단숨에 베스트셀링카 15위에 랭크됐고 올 들어서도 월평균 4,000대가량 팔리며 5위를 달리고 있다. 기아차의 판매 증가세는 ‘리오(국내명 프라이드)’가 이끌고 있다. 지난해 현대차 ‘쏠라리스’와 현지 브랜드 라다의 ‘그란타’에 이어 연간 베스트셀링카 3위를 차지했던 리오는 올 들어 1~3월 누적으로 2만1,101대가 팔려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올 상반기에 신형 쏠라리스와 신형 리오를 투입할 예정이어서 현재의 판매량 증가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으로 중국 판매량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 위안이 되는 요소다. 최근 국제 유가가 다소 오름세를 보이면서 러시아 자동차 시장이 올해 회복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되지만 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 AEB는 올해 러시아 자동차 시장 규모를 전년 대비 4%가량 성장한 148만대로 전망한 바 있다. 요르그 슈나이더 AEB 자동차 제조 위원장은 “러시아 자동차 판매가 분기 기준으로 4년만에 성장세를 기록한 것은 놀라운 뉴스”라면서도 “제비 한 마리가 여름을 만들지 못하듯 향후 월간 판매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행경기자 sain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