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황혼이혼...연금수급마저 서러운 노년 남성들

연금분할 부부 올 2만명 육박
과거 이혼 땐 50대50 나눴지만
이젠 소송으로 비율 조정 고민
올해부터 신청 기준도 바뀌어
분할연금 수급자 더 늘어날듯

은행원으로 28년을 근무하다 3년 전 명예퇴직한 박모(62)씨는 최근 아내의 이혼 요구에 망연자실했다. 다친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당장 국민연금 수급 문제가 골칫거리가 됐다. 과거에는 이혼할 경우 연금 분할비율이 남편과 아내가 50대50으로 정해져 있어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지만 올해부터 당사자 간 협의나 재판을 통해 분할비율을 결정하도록 바뀌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혼에 대한 상처를 치료하기도 전에 국민연금과 관련한 소송도 준비해야 할 처지가 답답하다”고 말했다.

황혼이혼이 늘어나면서 국민연금을 이혼한 배우자와 나눠 갖는 수급자가 2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0년 4,632명에 불과했던 분할연금 수급자가 2012년 8,280명, 2014년 1만1,900명 등으로 매년 크게 늘어 지난해에는 1만9,830명에 달했다. 최근 6년 사이에 4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분할연금 수급자를 성별로 보면 여성이 1만7,496명으로 88.2%를 차지했고 남성은 2,334명(11.8%)에 그쳤다.

분할연금 수급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황혼이혼이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통계청의 ‘2016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이혼 10건 중 3건은 20년 이상 한방을 쓴 부부간에 발생했다. 지난해 전체 이혼 건수인 10만7,300건 중 혼인지속기간이 20년 이상이었던 부부의 이혼이 30.4%로 가장 많았다. 특히 30년 이상의 황혼이혼 건수는 10년 전보다 2.1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올해부터 분할연금 신청 기준이 바뀌면서 분할연금 수급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분할연금을 받으려면 법적으로 이혼하고 혼인기간 5년 이상을 유지하며 이혼한 전 배우자가 노령연금을 탈 수 있는 수급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특히 연금 분할비율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률적으로 50대50으로 정해져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당사자 간 협의나 재판을 통해 분할비율을 결정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혼 책임이 큰 배우자에게까지 노후자금인 연금을 절반씩이나 떼주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라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또 올해부터 분할연금 선(先)청구 제도 도입으로 혼인기간을 5년 이상 유지하고 이혼했다면 이혼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전 배우자의 노령연금을 나눠 갖겠다고 미리 청구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분할연금을 청구한 당사자가 분할연금 수급연령(2016년 기준 만 62세)에 도달해야만 분할연금을 5년 안에 청구할 수 있었다.

분할연금 수급권은 1999년 국민연금법을 개정하면서 만들어졌다. 집에서 자녀를 키우고 가사노동을 하느라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못한 이혼 배우자에게 일정 수준의 노후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올해부터 분할비율에 대한 법적 다툼이 가능해지면서 관련 법 조항을 문의하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혼으로 인해 국민연금 분할수급이 올해 비약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