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국인의 원화채권 보유잔액은 지난 2015년 105조원을 상회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5월 99조1,000억원을 기록한 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다시 자금이 유입되면서 지난 11일 기준으로 4개월여 만에 다시 100조원을 넘어섰다.
외국인 자금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한동안 원화 강세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지난해 말부터 순매수세로 돌아섰다. 특히 아시아계 자금이 강세를 이끌었다. 시장 관계자는 “최근 중국이 채권시장을 개방하고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어 원화채권이 유용한 분산투자 수단이 되고 있다”며 “중국 등 아시아계에서 원화채권 보유를 늘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인이 사들인 물량은 대부분 통안채 등 만기가 짧은 단기물로 집계됐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3월 외국인 증권투자 동향’에 따르면 외국인이 지난달 순매수한 상장채권 2조6,070억원 중 85%가 통안채다. 전체 보유 규모의 77%에 이르는 국고채의 경우 오히려 3,000억원을 팔았다. 통안채의 순매수 규모가 2조9,000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잔존만기별 보유 현황을 보면 1년 미만의 초단기물 투자가 24조5,380억원으로 전체의 24.9%를 차지했으며 1~5년물은 48조9,760억원으로 전체의 절반인 49.6%에 달했다. 투자회수 기간을 의미하는 듀레이션도 올 초까지 유지되던 3.9년에서 최근 3.7년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서 단기채 투자 비중을 늘린 가장 큰 이유는 올해 1·4분기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시장에서 재정거래(아비트리지·arbitrage) 요인이 커진 탓이다. 재정거래란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 은행이 자국 본점에서 낮은 금리로 달러를 가져와 국내 은행에서 원화로 바꾼 후 국내 채권 등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외국인들이 금리 차와 함께 상대적으로 낮은 원화가치에서 차익을 얻을 목적으로 원화채권에 투자하는 것이다. 시장은 올해 들어온 외국인 채권투자 10조원 중 6조원가량이 2월 재정거래 요인으로 들어온 물량으로 보고 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월 미국 기준금리 인상 기대와 국내 보험사 해외투자 증가 등으로 스와프포인트(선물환율-현물환율)가 급락하면서 재정거래 유인이 발생했다”며 “외국인이 국내 펀더멘털을 보고 투자한 게 아니기 때문에 변동성이 커질 때 매매가 수월한 단기물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와프포인트 하락은 외국인의 원화채권 투자수익률 상승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 같은 외국인 투자 트렌드가 채권시장의 안정성을 깨는 불안 요인이 된다는 점이다. 단기물은 향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때 빠르게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채권시장은 투자구조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금리 인상, 지정학적 리스크 등 특정 이슈에 큰 규모의 자금이 일시적으로 움직이기도 한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이 예고된 상황에서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으로 원화채권을 매도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면서 외국인의 단기물 투자는 채권시장에 청신호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자금은 한동안 매수세를 지속하겠지만 투자심리 위축 요인에 주의할 것을 조언했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이 사드 보복의 일환으로 원화채권을 매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고 대북 리스크가 커지고 있어 실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할 여지도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중국 자금에 대해서는 “중국은 현재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 외환보유액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어 중국 입장에서 원화채권 매도는 쉽지 않다”며 “아직까지는 중국 자금이 채권시장에서 든든한 후원군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서지혜기자 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