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조기대선을 앞두고 차기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우리도 밖에서 본다면 극적인 현실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대통령 궐위상태에서 새 대통령이 선출되는 것도 그렇거니와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최악의 위기상황이라는 점도 엇비슷하다. 한국은 누가 대통령에 뽑히든 정권의 명운을 가른다는 인수위원회도 없이 곧바로 위기관리에 들어가야 할 초유의 상황이다. 북핵·미사일 사태로 촉발된 한반도 정세와 정치·경제의 복합위기는 이미 대통령이 홀로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봐야 한다. 촛불민심으로 대변되는 광장의 논리가 정치지형을 규정짓는 가운데 어느 대선후보도 운신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사회 구조적으로 대통령의 리더십이 취약한 상황인데도 정작 대내외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탁월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대선판에서 벌어지는 네거티브 공방은 우리의 퇴행적 정치문화를 떠올리게 만든다. 갖가지 약점과 허점을 들쑤시고 친인척 문제까지 거론하다 보니 누구 하나 온전한 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유권자들이 언뜻 보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후보들로 넘쳐나고 이들에게 선뜻 나라를 맡기기에 불안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나쁜 뉴스와 마타도어가 판치는 정치공세를 조금이라도 들여다보면 충분히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데도 말이다. 실제 투표에서 나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최적의 후보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선후보들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차선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플라톤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들의 통치를 받으며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고 갈파했다. 무엇을 선택의 중심에 놓는가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지만 최소한 정치적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미래 세대를 생각하는 분별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현재의 정치구조에서는 누가 무슨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이 되든 간에 ‘소수 정권’으로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태생적 부담을 안게 된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권 흔들기가 본격화하면 대통령의 인기와 지지도는 이내 추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수록 리더는 국가 경영의 큰 그림을 제시하고 정치세력이 책임을 공유하는 새로운 국정운영의 틀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처럼 다양한 연정 구도를 도입하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래야만 차기 대통령에게 주변 강대국의 공세에 맞설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생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지정생존자 출신의 대통령은 ‘100일 플랜’을 추진하며 가진 타운홀 미팅에서 50대 실직 근로자로부터 “버지니아주에 다시 공장을 가져올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잃어버린 일자리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거짓 공약을 거부한 지도자와 대중의 열린 자세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모든 문제를 구성원의 고통 분담 없이 한 방에 해결할 대통령은 없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통합과 책임의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다. 이런 멋진 대통령은 바로 유권자가 만드는 것이다. ssa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