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커피숍이 치킨집보다 많은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당장 아이 교육과 가계 경제를 맞벌이하는 아내 혼자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회사에서는 하반기 중 대규모 추가 희망퇴직을 진행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떠돌고 있다.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고용에 대한 불안이 김씨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퇴직 압박을 받는 사실상의 정년 시기가 40대 초중반까지 밀려 내려오면서 직장인들의 불안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과거 40대 중반 이후에나 하던 ‘만약’에 대한 고민을 최근에는 30대 초반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샐러리맨들의 하소연이다. 고용 불안이 일상화되다 보니 구매능력과 소비가 왕성하고 조직에서 든든한 허리가 돼야 할 30~40대까지 ‘불안 세대 (anxiety generation)’로 전락한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고용 측면에서 불안과 압박의 강도가 세지면서 개인 측면에서는 심리적 안정성이 낮아져 생산성이 떨어지고 사회 측면에서는 출산을 꺼려 인구문제가 심화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자리 감소는 수치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기관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그룹 계열사와 은행들은 고용 인력을 전년보다 1만9,903명(2.1%) 줄였다. 게다가 기업 대다수가 공격적인 확장정책 대신 축소 지향 경영에 몰두하고 있어 당분간 괜찮은 일자리는 늘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최근 학원가에 일고 있는 30~40대의 자기계발 붐은 퇴출 위기에 처한 직장인들의 즉자적이고 강박적인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단순히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제2외국어를 배우거나 자격증에 도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들이 처한 현실이라는 의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고용 부진이 심화하면서 직장인들의 불안 증세가 커지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같은 급격한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할 수 있다는 심리가 직장인들을 다양한 생존활동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불안 심리에 편승해 인생 이모작을 준비할 수 있는 직업교육학원도 늘고 있다. 2013~2015년 서울 강남·서초구에 신규 등록된 평생직업교육학원 수가 241개로 직전 3년간의 182개를 크게 웃돈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터넷쇼핑몰 창업, 정보보안, 게임 그래픽, 카지노 딜러처럼 예전에는 찾기 어려웠던 새로운 ‘먹을거리’를 가르치는 학원들이 잇달아 강남에서 문을 열었다.
퇴직을 미리 준비하는 교육시설도 있다. 지난해 5월 문을 열어 화제가 된 ‘퇴사학교’가 좋은 예다. 이 학교는 ‘꿈을 찾는 어른들의 학교’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퇴사학 개론, 이직 설계, 창업 입문 등의 강좌를 40만원 안팎의 강습료(두 달 1학기 기준)를 받고 진행하고 있다. 아예 시각을 바꿔 취직이나 창업이 아닌 창직(創職·직업을 새롭게 만듦)으로 고용 형태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회적기업 ‘만인의 꿈’을 운영하는 김동찬 대표는 “취직이 곧 정답인 경직된 사회구조가 문제”라며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추구할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