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대중교통 이용에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아다닌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남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으로 불쾌감을 주는 사람들이 완력이나 나이를 앞세워 적반하장 격으로 나올 때 딱히 대응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빗댄 말이다.
큰 소리 통화·대화 예사
임산부가 타도 양보 없고
완력으로 적반하장 대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승하차 순서를 지키지 않는 경우다. 하차객이 먼저 모두 내린 후 승차객이 타야 안전하고 서로가 편하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타서 자리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출입구가 뒤엉키기 일쑤다. 매일 시내버스로 출퇴근하는 유영주(24)씨는 “내 뒤에 줄을 서 있던 사람이 하차객이 내리기도 전에 앞질러 버스에 올라타 비어 있던 자리에 앉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힘으로 앞사람과 하차객을 밀어제치고 타기 때문에 어떻게 제지할 수가 없다”고 전했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큰소리로 전화통화를 하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시끄럽게 대화를 하는 것도 주변 승객들이 불편해하는 행동이다. 특히 최근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북한산·청계산·아차산 등 서울 시내 산 주변의 지하철에서는 매주 주말 등산객들의 민폐가 이어진다. 연신내역 인근에 사는 최정호(40)씨는 이런 승객들 때문에 주말에는 가급적 지하철을 타지 않을 정도다. 그는 “주말에 북한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기분이 들떠 큰 목소리로 떠드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오후에는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이 거나하게 술에 취해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임산부·노약자 등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의 임산부·노약자석에 다른 사람이 앉아 정작 그 자리가 절실한 사람들은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 둘째를 출산한 이지혜(38)씨는 “만삭일 때 지하철 임산부석에 한 남성이 앉아서 빤히 힘들어하는 모습을 모른 체할 때는 정말 화가 났다”면서 “하지만 괜히 자리를 비켜달라고 얘기했다가 봉변을 당할까 두려워 그냥 참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혼잡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은근슬쩍 발생하는 성추행은 빨리 뿌리 뽑아야 할 사회적 병폐로 꼽힌다. 경찰청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내 성추행 발생 건수는 지난 2012년 402건, 2013년 467건, 2014년 598건, 2015년 779건, 2016년 799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직장인 유은숙(30)씨는 “혼잡한 틈을 타 몸을 더듬는 성추행이 싫어서 아예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는 여성들도 있다”며 “바쁜 출근길에 성추행이 일어나면 어쩔 수 없이 그냥 참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은근슬쩍 두 자리를 차지하고 앉거나 옆자리에 짐을 두고 잠자는 척하는 얌체족들도 있다. 자기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 배려는 전혀 하지 않는 것이다. 또 자리에 앉을 때도 다음 사람을 위해 안쪽 좌석에 먼저 앉는 것이 매너지만 내릴 때 편하기 위해 굳이 바깥쪽부터 앉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 생활 10년 차를 맞는 한 일본인 주부는 “일본에서는 뒤에 타는 사람을 위해 안쪽 자리부터 채워서 앉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데 한국은 아닌 것 같다”며 “서로를 조금만 배려하면 모두가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한 모습을 너무 자주 봐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어린시절부터 가르쳐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대중교통 이용 문화가 후진적인 가장 큰 이유로 대중교통 이용예절 교육 부족을 첫손에 꼽는다. 집안에서는 물론 학교에서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대중교통 이용예절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곽문수 도로교통공단 서울지부 안전교육부장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대중교통 시스템이 빠르게 발전했지만 대중교통 이용과 관련한 교육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시민의식이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선진국들은 어린 시절부터 교과과목에 교통문화를 포함시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배운다”며 “우리도 이제 학교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대중교통 이용예절에 높은 비중을 두고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