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서울 지하철 9호선 여의도역이 퇴근길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송은석기자
“이럴 거면 줄은 왜 서는지 모르겠네요.”지난 14일 오전7시30분께 9호선이 출발하는 김포공항역. 플랫폼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평화롭게 줄을 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 후 모든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로 종합운동장역 방향 급행열차가 도착했다. 하지만 출입문이 열리자마자 플랫폼은 전쟁터로 변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질서 있게 줄을 서 있던 시민들은 야수로 돌변했다. 자리에 앉기 위해 뒷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앞사람을 밀치고 지하철에 타면서 불과 몇 초 만에 아수라장이 됐다. 뒷사람의 새치기로 자리를 뺏긴 한 중년 남성은 찡그린 표정으로 손잡이를 잡으며 자리에 앉은 20대 남성을 째려봤다. 소용없었다. 그 남성은 자기가 뭘 잘못했느냐는 표정으로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게임에 몰두했다.
김포공항역에서 출발해 20여분 후 도착한 여의도역은 그야말로 ‘지옥철’이었다. 문이 열리자 내리려는 사람들과 타려는 사람들이 동시에 뒤섞이며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지하철 안쪽에 서 있던 한 30대 여성은 내리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끼여 울상을 짓기도 했다. 김포공항역에서 여의도역으로 2년째 9호선을 이용해 출퇴근한다는 김모(42)씨는 “사람들이 뒤엉켜 여의도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노량진역에서 내린 적이 몇 번 있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매너를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나만 질서를 지키면 결국 손해를 보게 되더라”고 말했다.
9호선 고속터미널역에 내려 3호선으로 갈아타는 환승로에 접어들자 ‘스마트폰 좀비’들이 대거 출현했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걸어가는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히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이어폰 줄이 지나가던 다른 사람의 가방에 걸려 스마트폰을 떨어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서로에게 “미안합니다”라는 말이나 미안함을 표하는 목례는 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듯 스마트폰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하루 평균 800만명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에서 매일같이 만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두형기자 mcdj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