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초과학 살리려면 사농공상 관념부터 깨라

서울경제신문이 최근 한국연구재단과 함께 실시한 기초연구 설문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과학연구·연구자에 대한 홀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8일자에 관련 시리즈가 보도되자 많은 네티즌들이 비참한 한국 기초과학 현실에 대해 울분을 토해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중소기업 연구직으로 들어갔다는 한 네티즌의 사연은 자괴감이 들 정도다.

이 네티즌은 회사 측이 연구개발(R&D) 인력을 영업부서로 배치하는 등 인력을 줄여나가자 해외 이직을 결심하고 팀장에게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사표를 받은 팀장이 ‘한국에서 연구직은 부귀영화를 꿈꾸면 안 된다’고 말해 참담했다고 토로했다. 기초과학 연구자들의 현주소를 보면 이 네티즌의 토로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연구기관에 근무하는 박사학위 연구원의 연봉은 대기업 직원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박봉을 참고 연구에 몰두하고 싶어도 그런 환경이 되지 않는다. 연구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마저도 지원기간이 짧다. 연간 연구비가 5,000만원 미만인 경우가 태반인 실정이다. 연구원 한 명의 인건비를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하소연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기초연구과제 지원기간도 대부분 3년이어서 중장기 연구가 불가능한 구조다.

그마저도 정부나 공공기관이 정한 주제연구를 중심으로 예산을 배정하는 게 다반사니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연구성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겠는가. 이 상태로는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한다는 것은 꿈일 뿐이다. 기초과학 현실이 이 지경이 된 데는 기술이전이나 사업화 등으로 평가하는 단기성과 위주 정책 등의 탓이 크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관념이다. 의사·법조인이 우대받고 고연봉 직장이 좋은 직업이라고 여기는 왜곡된 가치 배분의 틀을 바꾸는 게 시급하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과학의 암담한 현실은 쉽게 나아지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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