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중앙은행 금괴

금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했다. 황금마스크의 주인공 투탕카멘의 이집트왕국, 금으로 사원을 만든 인도 무굴제국, 해가 지지 않았다는 대영제국이 그랬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패권국인 미국은 어떨까. 국가별 금 보유량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유사 이래 금 보관처는 금기시됐고 거래 역시 비밀에 부쳐지긴 지금도 마찬가지다. 개인 보유량은 더더욱 알기 어렵다. 금이 지하경제의 상징으로 불리는 연유이기도 하다. 다만 어느 나라든 중앙은행이 가장 많은 금을 보유하고 있다. 금은 대외 지급결제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국제금위원회(WGC)에 따르면 금 보유량 1위 중앙은행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다. 뉴욕 연준의 금 보유량은 8,000톤 안팎. 전 세계 중앙은행 보유량의 25%가 이곳에 몰려 있다. 영화 ‘다이하드 3’에서 사이먼 일당이 테러를 가장해 금괴를 턴 은행이 바로 이곳이다. 축구장 절반 크기의 이 금고에는 12.5㎏짜리 금괴가 60만개쯤 쌓여 있다. 영화에서는 굴착기로 금괴를 퍼 담아 덤프트럭으로 실어 나르지만 연준 금괴를 죄다 털려면 수백 대의 트럭이 필요하다. 15톤 트럭 10대로 빼돌릴 수 있는 금괴가 고작(?) 1만개(125톤)에 불과하니 연준의 금 보유량을 짐작하게 한다. 이 금괴의 주인은 연준이 아니다. 95%는 다른 나라 중앙은행이 보관을 의뢰한 물량이고 나머지 5%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미 연방정부 소유다. 미 정부 소유 금괴는 켄터키의 군사기지 포트녹스 등에 있지만 정확한 물량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은도 보유 외환 다변화 차원에서 금 투자를 하지만 실물은 영국 중앙은행에 있다. 보관도 문제지만 금 대여 수익을 챙기기 위해서다. 영국은 국제 금 거래의 중심지다. 한은이 본부 재건축을 위해 조만간 이사를 갈 예정이다. 수 조원의 현금을 보관하는 지하 금고도 개보수한다지만 금괴 금고를 별도로 만들지 않을 모양이다. 그 이유에 대해 한은 관계자의 농담조 설명이 재미있다. “땅속에서 금광석을 파서 금괴로 다시 지하에 묵혀두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있느냐”고.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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