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금융위원장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사진)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좌교수는 19일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지키기 위해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와 같은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같은 일이 앞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데 신속하고 책임 있는 결정을 하려면 정치권과 정부의 개입을 차단하고 국민연금 스스로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10년 넘게 지지부진한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전 교수가 구상한 실행 방안은 정부·기업·노동계 등 형식적인 대표성만 갖췄을 뿐 전문성이 없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구성부터 바꾸는 일이다. 전 교수는 “현재 기금운용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관련 부처 차관과 노동계 등 비전문가가 대부분인 20명의 위원으로 이뤄져 있어 그 자체가 정치권과 정부의 개입이 가능하다”면서 “최고의 전문가 6~7명이 금리를 결정하면서 권위를 인정받는 금통위처럼 바뀐다면 지금보다 신속하고 책임 있는 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08년 금융위원장에 이어 2009년부터 5년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그는 대우조선해양 회사채 채무재조정 과정에서 대립각을 세운 양측의 입장이 모두 이해된다고 했다.
다만 이번 협상도 일종의 거래인 만큼 국민연금이 최대한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상대에게 강하게 요구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정부 일각에서 국민연금의 무리한 요구로 대우조선해양 도산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정부와 산은이 사실상 법정관리인 프리패키지드플랜(P플랜) 가능성을 내세우며 압박한 데 대해 국민연금이 채권단보다 많은 자료와 상환 보장이 필요하다고 맞선 것은 투자자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정부는 국민연금과 협상하느라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민연금을 뜯어고쳐야겠다고 판단할 수 있다”며 “타이밍도 중요하지만 국민연금은 가입자 이익을 최대한 지키는 선량한 관리자의 책임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최근 국민연금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과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으로 우수한 인력이 이탈한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지역구 정치인들은 국민연금이 전주로 이전하면 외국인투자가들이 몰려들어 지역 경기가 살 것이라고 홍보했지만, 오히려 글로벌 사모펀드들은 짧은 한국 방문 일정에 전주까지 들르기 힘들다는 이유로 국민연금 방문 약속을 취소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며 “전주 이전이 경기를 살리기 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기금운용본부를 소외시켰다”고 말했다. 인력 이탈 문제를 두고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책임 추궁이 과도하게 이어지면서 관련 없는 직원들의 사기까지 떨어진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국민연금은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해야 독립성을 주장할 수 있는데 최근 우수인력의 이탈이 많다”면서 “불법적인 요인이 없는 한 개별 투자 건마다 배임 문제를 제기하면 인재가 들어올 수 없다”고 비판했다. 차기 대선주자들의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공약과 관련해 전 교수는 “대선주자들이 국민연금 기금을 공공투자에 활용하겠다고 하는데 공적연금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면서 “투자 결정은 국민연금이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지 정부가 정책수단으로 동원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