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성장엔진 위한 소프트인프라]대학 기술지주회사 양적팽창 했다지만...

9년동안 16배로 급증 불구
연간 매출액은 걸음마단계
전문 인력·전용 펀드 절실

연대 기술지주사 자회사로 출발한 바이오 의료 전문기업인 라파스 연구원들이 연구실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연대 기술지주사


라파스는 국내 기술지주회사가 투자한 여러 회사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정형일 연세대 교수가 개발한 생분해성 마이크로니들 기술로 바이오 미용과 의료용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연내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을 정도로 실적이 좋다. 연세대 기술지주회사는 지난 2015년 라파스 주식 일부를 정도현 라파스 대표에게 매각해 800%가 넘는 투자수익을 얻었다.

대학발(發) 기술 창업의 요람으로 기술지주회사가 주목받고 있다. 대학이 가진 기술이나 연구 성과를 사업화하는 기술지주회사는 2008년 한양대와 서울대·삼육대 등 세 곳을 시작으로 48곳이 설립됐다. 기술지주사가 보유한 자회사는 총 435개, 연구소는 195개나 된다. 9년 동안 16배 증가했다.

대학은 연구개발(R&D)을 통해 다양한 지식재산(IP)을 갖게 된다. 기술지주회사는 이 IP로 수익을 낸다. 추가 R&D가 필요하면 기술지주회사가 별도 자회사를 만들어 사업성을 검토하고 초기 투자 지원, 시제품 제작, 마케팅 등 필요한 조치를 한다.


수십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해외 명문대 산하의 기술지주사들은 이미 기술 창업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곳이 이스라엘 히브리대의 ‘이숨’, 미국 스탠퍼드대의 ‘SRI인터내셔널’, 영국 옥스퍼드대의 ‘아이시스(Isis)이노베이션’, 그리고 중국 칭화대와 베이징대의 기술지주사 등이 꼽힌다. 이들의 연 매출은 수십억달러에 달한다.

눈을 돌려 국내를 보면 아직 걸음마 단계다. 연 매출이 많아야 수백억원 수준이다. 아직 인력과 자금, 마케팅, 상장(IPO) 등 사업 전 단계에 걸친 지원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구조적으로는 인가를 교육부, 지원을 미래부가 각각 맡아 일관적 정책 수립이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기술지주사 자회사는 공공기술 사업조직으로 분류돼 별도의 세제 혜택은 물론 대주주인 기술지주사 보증도 어렵다.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산학협력법)’에 따라 기술지주사가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외부 투자를 적극 유치하지도 못한다. 최근 교육부가 대학 중심 기술사업 활성화를 위해 자회사 지분보유 비율 완화(20%→10%) 등 법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질적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홍승표 고려대 기술지주회사 대표는 “기술지주사는 ‘공공기술 기반의 액셀러레이터’라는 인식을 갖고 대학발 기술 창업 기업들이 중소·중견기업으로 갈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전제가 되는 것이 기술지주회사의 전문성인데 민간 창업투자사 심사역 수준으로 기술을 평가하고 시스템 지원 및 컨설팅을 할 수 있는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민간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수급돼야 하는데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자체 교원이나 교직원을 활용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얘기다. LG반도체와 기술보증기금 출신의 홍 대표가 지난해 9월 고대에 영입된 것이나 올 3월 창투사 출신의 박동원씨에게 서울대 기술지주사 대표를 맡긴 정도가 외부 전문인력 영입 사례다.

기술 기반으로 창업을 한 후에는 성장단계별로 필요한 자금이 투입될 수 있는 안정적 펀딩 환경도 중요하다. 이지훈 한국기술지주회사협회 사무국장은 “기술 창업이 자리를 잡는 데 오래 걸리는데다 연구개발비 비중도 높은 만큼 사업화 단계까지 가는 데 필요한 총알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모태펀드 방식의 전용 펀드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대학기술지주사 전용 펀드를 만든 후에 케임브리지대와 옥스퍼드대에서 의미 있는 규모의 성공 사례가 나오고 미국에서는 벤처캐피털이나 엔젤펀드 등 민간의 자금이 대학의 기술 창업에 투자하는 분위기가 정착되면서 선순환되고 있는 현실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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