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M&A, 목적인가 수단인가

임태순 케이프투자증권 사장

인수합병(M&A)은 단순히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넘어 시간을 산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기업을 창업해서 제대로 키우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나 이미 모양을 갖춘 기업을 인수하면 그만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M&A를 추진할 때는 인수에 따른 효과와 인수 후 경영계획, 인수조건 등을 치밀하게 검토하고 준비한다. 그러나 결과를 보면 M&A를 통해 경쟁력 있는 회사로 성장한 경우도 있고, 반대로 사세가 위축되거나 공중분해 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M&A를 통해 기업이 오히려 위축되는 경우는 M&A를 수단으로 보지 않고 목적으로 보고 접근했다는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인수과정에서 경쟁자 간에 가격경쟁이 발생하게 마련이고, 경쟁에 집착하다 보면 어느새 회사를 인수해서 얻고자 했던 목적은 오간 데 없고 회사를 인수하는 것 자체가 목적으로 변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인수성공’이라는 훈장을 달아주게 되고, 이 훈장은 나중에 부메랑이 돼 큰 짐으로 변하게 된다. M&A를 잘 활용하는 회사들은 M&A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보고 접근하기 때문에 무리한 가격경쟁을 하지 않는다. 간혹 가격을 높게 써서 인수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남들보다 더 큰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목적에 맞춰 수단을 강구했다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상황이 변하게 되면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수단을 찾지 못했을 때는 목적을 포기하는 차선의 선택도 필요하다. 상황이 변했는데 기존의 수단에 집착하다 보면 수단이 목적으로 둔갑해 버리고 만다.

수단과 목적이 이미 바뀌었다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레드테이프(red tape)’ 현상이 발생한다. 이미 쓸모가 없어진 수단을 관성적으로 쓰게 돼 불필요한 관행과 고정관념을 만들어 낸다. 레드테이프 현상을 없애기 위한 방법은 항상 ‘왜’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가벼운 수준의 의문을 가지고 있더라도 레드테이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수단과 목적이 이미 도치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단을 바꾸지 않게 되면 위장이나 거짓으로 잘못된 결과를 포장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심한 경우 골든타임을 놓쳐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과거에 발생했던 국내외 금융위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금융전문가라면 당연히 수단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건의도 위로부터의 지시도 없었으며, 발생한 문제가 작아 보이게 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고급인력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수단을 바꾸자고 했다가는 처음부터 수단을 잘못 선택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수단을 바꿈으로써 발생하는 혼란이나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수단과 목적의 도치라는 관점에서 의문을 가져보라. 그러면 새로운 점이 보이게 된다. 아울러 바뀐 상황에 맞는 새로운 수단을 찾아 제안하는 용기까지 가진다면 더욱 좋다. 그러면 창의적인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된다. 스마트폰의 원조는 캐나다의 블랙베리이고, MP3의 원조는 한국의 엠피맨이지만 사람들이 애플이나 스티브 잡스를 창의와 혁신의 아이콘이라 부르는 이유다. 임태순 케이프투자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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