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은 원래 '대안문'이었다

국립고궁박물관 내달 14일까지
대한제국 흥망성쇠 아로 새겨진
'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 개최

원래 덕수궁 동문은 1899년부터 1906년까지만해도 ‘대한문’이 아니라 이처럼 ‘대안문’이라 적은 현판이 걸려있었다. /사진제공=문화재청


덕수궁 동쪽 문인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었다. 1899년 3월부터 1906년 4월까지만 해도 현재 대한문 자리에는 가로 347㎝, 세로 124㎝ 크기로 ‘대안문’이라 적은 현판이 걸려 있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대신을 지낸 민병석이 ‘크게 편안하다’는 의미로 썼다. 이후 ‘대한문’으로 바뀌었지만 누가, 어떤 이유로 바꿨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따지고 보면 덕수궁이라는 이름도 원래는 경운궁(慶運宮)이었다. 고종 황제는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을 법궁으로 썼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해 10년간 황궁이었던 ‘경운궁’의 현판 13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현판으로 보는 대한제국 황궁, 경운궁’을 5월 14일까지 개최한다.

경운궁이 조성되던 1986년 정동 일대는 미국·영국·독일·러시아·프랑스 등 서구 공사관이 모여 있었고, 경운궁은 주변 민가와 외국인 거주지를 매입해가며 황궁의 모습을 갖췄다. 경운궁 남쪽에 원래 정문으로 만들어진 인화문(仁化門) 현판과 고종이 드나들었던 북동쪽 문인 포덕문(布德門) 현판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즉조당에 1898년 2월부터 걸렸으나 1902년 새로운 중화전이 건립되면서 내려간 중화전(中和殿) 현판, 석조전 뒤쪽 서양식 건물인 구성헌(九成軒) 현판, 고종의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처소였던 영복당(永福堂) 현판, 고종의 어진을 모셨던 흠문각(欽文閣) 현판 등을 두루 볼 수 있다. 현판의 변천사에서 대한제국의 흥망성쇠가 보인다. ‘제3회 궁중문화축전’(28일~5월7일) 기간에는 오후 9시30분까지 야간 관람도 가능하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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