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20년 국제해사기구(IMO)의 황산화물(SOx) 배출 규제 시행을 앞두고 글로벌 해운 선사들이 처한 상황이 꼭 사탕 가게에 들어간 어린아이 격이다. 선복(화물을 실을 수 있는 공간) 공급 과잉에 따른 저운임 탓에 글로벌 선사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빠진 상황에서 IMO 규제에 따라 황산화물 배출 비율을 0.5% 이하(현행 기준은 3.5%)로 낮춰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글로벌 선사들에 주어진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기존 선박에 탈황 장치 ‘스크러버’를 달든지 저황유를 사용하든지, 아니면 아예 황산화물 배출이 없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연료로 쓰는 LNG추진선을 운항에 투입해야 한다. 세 가지 선택지 모두 선사들에 막대한 비용 부담을 줘 어느 하나 선뜻 고르기 어렵다. 국제벙커업협회(IBIA)와 로이드선급 등이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IMO 규제를 주제로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한 해양기술 분야 전문가의 ‘사탕 가게의 어린아이’ 비유가 나온 배경이 여기에 있다.
◇고민 깊은 글로벌 해운업계=글로벌 선사들의 고민은 단순하다. ‘생필품은 사야겠는데 가계 사정이 팍팍하다’는 것이다. 가장 간편한 방법은 기존 선박을 쓰되 연료를 저황유로 대체하는 것인데 기존 벙커C보다 저황유 가격이 30~60% 비싸 부담이다. 아예 LNG추진선을 운영하면 좋지만 일반 선박보다 선가가 1,000만달러가량 높다.
이 때문에 국내 선사들은 스크러버를 다는 방법이 그나마 경제적으로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오일 메이저인 BP 역시 최근 “스크러버 설치가 IMO 규제에 적응하기 위한 가장 저렴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경제적이라고는 하지만 스크러버 설치 비용도 만만찮다. 5,000~7,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크기)급 컨테이너선에 스크러버를 설치할 경우 척당 500만~700만달러의 비용이 든다. 선박 크기가 커질수록 비용도 비례해 늘어나 1만TEU급은 약 900만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전해진다.
1만TEU 이상 5척을 비롯해 33척의 사선(社船)을 운영하고 있는 현대상선의 경우 선대 규모 등을 고려하면 약 2,0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사선 292척을 포함해 총 730척의 선대를 보유한 머스크 등 글로벌 초대형 선사들은 천문학적인 비용 투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IMO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고민하고 있다”면서 “한 가지 방법을 모든 선박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보다는 선택지 내에서 선박 규모 등을 고려해 적절히 혼합해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닥 보인 수익성·불확실성에 선뜻 못 나서=규제 대응도 벅찬데 글로벌 해운업계 경영 상황은 여전히 보릿고개다.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가 지난해 3억7,600만달러(한화 4,300억원) 영업손실을 낸 것을 비롯해 현대상선은 같은 기간 무려 8,3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운임이 소폭 회복하긴 했지만 여전히 수익을 담보하기에는 낮은 수준이라는 게 업계 설명이다. 선주협회 관계자는 “해운업계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환경 규제가 하필이면 업황이 가장 안 좋은 시기에 시행돼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규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곳곳에 깔려 있다는 점도 선사들의 과감한 의사결정을 까다롭게 만드는 요인이다. 글로벌 해운선사의 한 고위관계자는 “망망대해 공해를 이동하는 선박이 황산화물을 얼마를 배출하는지 누가 일일이 확인을 할 수 있겠냐”면서 “규제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 선사들이 이익을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LNG추진선의 경우 연료를 공급할 수 있는 벙커링 인프라가 주요 항만에 구축돼 있어야 하지만 아직 관련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점도 불확실성 요인으로 꼽힌다.
/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