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협회 측 “‘혼술남녀’ PD사망, tvN 반박 말고 사과하라”

한국PD연합회가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故 이한빛 PD 사망 사건과 관련해 tvN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한국PD연합회는 24일 공식입장을 통해 “이한빛 PD의 사망은 개인의 죽음이 아닌 드라마업계의 잘못된 제작 구조에서 벌어진 사회적 죽음”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사건 이후 tvN이 보인 태도에 우리는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 PD의 죽음을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나약한 개인의 자살로 몰아가는 tvN의 태도는 재발 방지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케 할 뿐 아니라, 유족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PD연합회 “이 사건은 회사 내에서 가장 지위가 열악한 신입사원의 희생과 상처를 당연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규직 PD에 대해서는 ‘공채로 들어온 것에 감지덕지하고 시키는 대로 해라’ 계약직 PD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자를 수 있다’는 투로 대하는 것은 새로운 대한민국이 청산해야 할 구태”라며 “tvN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반박하려고 노심초사할 게 아니라, 스스로 반성하고 새로운 제작 풍토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PD연합회 또한 “tvN은 아무 조건 없이 유족들에게 깊이 사과하고 성의 있는 재발 방지책을 제시해야 한다”며 “한국PD연합회는 이한빛 PD의 죽음으로 노출된 드라마 제작현장의 비인간적인 노동조건과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고 이러한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한빛 PD는 지난해 1월 CJ E&M 공채 PD로 입사해 4월 ‘혼술남녀’ 팀으로 배정돼 드라마 제작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는 ‘혼술남녀’ 종영 이튿날인 같은 해 10월26일 숨진 채 발견됐다.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고인은 초고강도 노동, 동료들의 언어폭력 등을 이유로 자살했다며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을 문제 삼았다.

다음은 한국PD협회 공식입장 전문

이한빛 PD 사망 소식을 뒤늦게 접했다. 이 PD는 지난해 tvN(CJ E&M)에 입사,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로 일하던 지난해 10월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태로 발견됐다. 유가족과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이 불행한 사건의 배경에 △ 심각하고 열악한 노동환경 △ 장시간 노동과 과도한 업무부여 △ 이한빛 PD에게 가해진 언어폭력과 괴롭힘 등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PD연합회 회원 여부를 떠나 우리는 이한빛 PD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며, 유족과 친지 등 상처 입은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일어난 이 불행한 사태에 우리는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으며, 사건의 예방과 후속조치를 위해 아무 역할을 못한 데 대해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

이한빛 PD의 사망은 개인의 죽음이 아닌 드라마업계의 잘못된 제작 구조에서 벌어진 사회적 죽음이다. 사건 이후 tvN이 보인 태도에 우리는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 PD의 죽음을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나약한 개인의 자살로 몰아가는 tvN의 태도는 재발 방지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케 할 뿐 아니라, 유족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가 아니다. 아들의 실종 소식을 듣고 놀라서 찾아온 어머니의 면전에서 “(이 PD가) 회사에서 불성실했다”고 폄하하며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니 기가 막힌다. 오죽하면 유족들이 tvN 관계자의 조문마저 거절했을까.

tvN은 ‘혼술남녀’ 촬영이 한창 진행되던 8월 외주업체와 소속 스태프를 대거 교체한 일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일방적인 계약해지와 계약금 반환 등의 문제를 신입 조연출인 그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 PD가 남긴 유서에는 “가혹한 촬영현장의 노동조건과 자신이 그러한 ‘노동 착취’의 행위자가 되어야 하는 현실에 좌절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을’에 해당되는 외주업체와 스탭을 교체하는 일을 신입 조연출에게 떠맡긴 게 온당한 처사였는지, tvN 관계자들에게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PD는 우리 사회 ‘을’들의 열악한 처지에 마음 아파하며 입사 후 봉급의 상당액을 여러 사회단체에 기부해 왔다고 한다. 이러한 이 PD의 꿈을 좌절시킨 데 대해 tvN은 가슴 아파하며 사과하기는 커녕 “(이 PD가) 비정규직을 무시했다”고 비난했다고 한다. tvN의 태도에 일말의 진실성이 담겨 있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사건은 회사 내에서 가장 지위가 열악한 신입사원의 희생과 상처를 당연하게 여기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규직 PD에 대해서는 “공채로 들어온 것에 감지덕지하고 시키는대로 해라”, 계약직 PD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자를 수 있다”는 투로 대하는 것은 새로운 대한민국이 청산해야 할 구태에 다름 아니다. tvN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반박하려고 노심초사할 게 아니라, 스스로 반성하고 새로운 제작 풍토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검찰과 경찰의 조사가 있을 경우 응하겠다”는 tvN의 태도는 온당치 못하다. 법적인 책임이 없다면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뜻인가? 유족과 대책위가 요구하는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 방지책 마련을 외면하겠다는 뜻인가? 물론 tvN 혼자서 드라마 제작 현장의 해묵은 악폐와 관행을 고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tvN의 도덕적, 사회적 책임이 면제되는 건 아니다. ‘드라마계의 관행’이라고 눙치지 말자. ‘조연출은 원래 그런 거’라며 외면하지 말자. 이 PD에게 가해진 언어폭력과 괴롭힘은 어떻게 할 것인가? 특정한 사람의 죄를 물을 수 없기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인가? tvN은 아무 조건 없이 유족들에게 깊이 사과하고 성의있는 재발 방지책을 제시해야 한다.

tvN은 올해 ‘혼술남녀’의 속편을 제작, 방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tvN 경영진과 ‘혼술남녀’ 제작진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한 젊은 PD의 죽음에 마음 아파하는 감수성과 공감능력을 먼저 보여주기 바란다. 그 바탕 위에서 제작된 드라마만 시청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 사건이 비단 tvN만의 문제라고 생각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비극적 사건이 또 다시 일어나도 괜찮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촛불 대선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이 사건의 충격과 상처를 어루만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작 현장의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은 이 시대가 우리 방송인들에게 요구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한국PD연합회는 이한빛 PD의 죽음으로 노출된 드라마 제작현장의 비인간적인 노동조건과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고 이러한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

/서경스타 금빛나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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