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장편소설 ‘뜻밖의 생’을 쓴 김주영 작가 /사진제공=문학동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리니.”대하소설 ‘객주’ 완간 후 4년 만에 쓴 장편소설 ‘뜻밖의 생(生)(문학동네 펴냄)’으로 26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기자 간담회를 연 김주영 작가가 창간 소회를 밝히던 중 러시아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읊었다. 올해로 등단 47년, 여든을 목전에 둔 79세(한국 나이)의 작가가 ‘아직도 글을 쓰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손바닥만 한 종이에 시를 프린트해 왔다. 그가 아는 푸시킨은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을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진 작가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흘러가는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이탈리아 속담이 있는데 ‘왜 나는 흐르는 물로 물레방아를 돌리는 억지를 부리는가’ 생각한다”며 “그런데도 내가 아직 (문학) 세계를 놓지 못하는 것은 춥고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겠다는 꿈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새 장편소설 ‘뜻밖의 생’을 쓴 김주영 작가가 26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출간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문학동네
새 장편소설 ‘뜻밖의 생’을 쓴 김주영 작가가 26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출간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제공=문학동네그의 눈과 글귀는 늘 어두운 곳을 향했다고 자부한다. 19세기 후반 보부상의 이야기를 담은 ‘객주’ 역시 민중생활사를 재현한 최고의 소설로 꼽힌다. “체질상 잘나고 어깨에 힘 주는 사람, 우기는 사람, 이런 사람하고 아예 인연을 두지 않았죠. 늘 어둡고 추운 곳에 사는 사람에게 눈길을 주고 그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끼고 살았습니다. 나는 자서전 성격을 띠지 않는 소설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아무리 조사를 열심히 해도 자전적 요소가 드러나지 않는 소설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힘들죠. 내 소설이 계속 위로의 글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번 소설은 대하소설 ‘객주’를 쓰기 위해 30여년간 ‘길 위의 작가’로 전국을 누빈 경험과 청주에서 진돗개 두 마리를 키우며 남은 경험을 살려 썼다. ‘객주’가 그렇듯 뚜렷한 주인공이 있지는 않지만 그중에서도 노름에 빠진 아버지와 무속에 빠진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남자 박호구와 그를 지켜주는 이웃집 개 칠칠이, 그리고 박호구에게 갑자기 나타나는 떠돌이 창부 최윤서를 비중 있게 비춘다. 이야기는 희극도 비극도 아닌, 행복과 불행이 중첩된 삶을 펼쳐 보인다. 김주영은 “보통 사람들이 ‘소새끼’ ‘코끼리새끼’라는 말은 안 하면서 ‘개새끼’라는 말로 인간 망나니를 비하하지 않느냐”며 “박호구가 최하층 밑바닥으로 꼽히는 개에게 위로를 받는 모습을 통해 삶에는 언제나 고난보다 방법이 더 많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갈수록 집필 작업이 더뎌지는 탓에 다음 작품은 기약하지 않았다. 그는 “어둡고 추운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그게 내 관심사”라며 “늙어 속도는 느리지만 앞으로 나가는 것은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웃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