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의 4차 산업혁명] 일자리, 높은 수준으로 진화한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이사회 이사장·KAIST 초빙교수
<30> 사회변화 때마다 소멸·생성
산업혁명은 욕망 채우는 과정
AI로 더 많은 여유 생길 미래
'자기표현의 욕구' 충족시킬
새 일자리 계속 생겨날 것

다보스·옥스퍼드·가트너와 한국의 노동연구원 등 많은 연구기관이 4차 산업혁명에서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보고서를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비관론은 한국의 4차 산업혁명 전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관건은 기술보다 제도인데 정말 일자리가 사라진다면 사회적 저항으로 제도 개혁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모든 사회 변화는 일자리의 소멸과 생성으로 이뤄져왔다. 19세기 80%에 달한 농업 일자리는 이제 2% 미만으로 축소되고 78%는 제조업·서비스업과 플랫폼 직업으로 전환됐다. 사회 변화 과정에서 일자리 소멸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다. 사회 발전은 낮은 수준의 일자리가 높은 수준의 일자리로 진화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의 일자리에 대한 본질적 질문은 소멸의 일자리를 넘어 생성의 일자리가 돼야 할 것이다.

기존의 세 차례의 산업혁명은 단순한 기술혁명을 넘어 인간의 욕망을 새로운 기술이 충족시킨 과정으로 재해석돼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의 산업혁명을 해석해보면 4차 산업혁명이 창출할 일자리가 보이게 될 것이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 에너지와 기계 기술로 인간의 생존 욕망을 충족시키는 의식주를 만드는 일자리들을 창출했다. 증기기관과 방적기(실을 만드는 기계)와 방직기(실로 천을 짜는 기계)는 면직물 생산성을 극적으로 증대시켜 영국 서민들도 면직물을 입게 됐다. 이동 수단이 발전해 고가의 유통 비용으로 인한 지역별 식량 수급 문제가 해소됐다. 말을 이용한 수송은 말 먹이 비용의 한계로 식량의 지역 이동시 높은 비용이 수반됐다. 주택 비용도 분업에 따른 생산성 증가로 하락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1차 산업혁명은 수많은 제조업 일자리를 만들게 된 것이다.


2차 산업혁명은 전기 에너지와 대량 생산 기술로 인간의 안정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자리를 창출했다. 포드 자동차로 대표되는 대량생산 기술은 제조업의 생산성을 극적으로 증대시켜 인간의 욕망을 생존을 넘어 편리함을 추구하는 단계로 발전시켰다. 즉 높은 제조업 생산성은 인간의 욕구를 제품을 넘어 서비스로 확장할 발판을 마련했다. 제조 생산성이 증대된 2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서비스 일자리를 만들게 된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 기술로 인간의 사회적 연결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자리를 만들었다. 인터넷으로 촉발된 온라인 가상세계에서 인간의 사회적 연결 욕구가 충족되면서 새로운 사회적 현상이 등장하게 됐다. ‘식구(食口)’라는 ‘같이 밥 먹는’ 오래된 사회 활동이 ‘혼밥’으로 대체되고 있다. 인간의 본질적 욕구인 사회적 연결 욕구가 온라인에서 충족되면서 오프라인의 연결 강도가 낮아지게 된 현상이다. 혼밥에 이어 ‘혼술’ ‘혼영(혼자 영화 보기)’을 거쳐 ‘혼생(혼자 살기)’에 이르러 결혼율도 낮아지고 있다. 여하튼 3차 산업혁명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던 다양한 플랫폼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 창출할 새로운 일자리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우선 기존의 인간의 욕구를 더 적은 자원과 인력으로 충족시킬 새로운 기술 일자리가 등장하게 된다. 로봇, 인공지능(AI), 데이터 분석 등의 일자리다. 이제 남는 여유 시간과 자원으로 인간의 새로운 욕망을 충족시킬 일자리가 등장할 준비가 됐다. 인간의 새로운 욕망은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4단계에 해당하는 자기표현의 욕구가 될 것이다. 좀 더 세분한다면 명예와 인지와 심미적 욕구다. 다시 말해 개인화된 다양한 자기표현 욕구의 충족을 위한 일자리들이 4차 산업혁명에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각 단계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의 단계별 욕구를 충족시킬 일자리들이 새롭게 등장해왔다. 지금 한국의 일자리 종류가 3만개 수준인 데 비해 미국의 일자리 종류는 40만개에 달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는 과연 얼마나 다양한 일자리가 등장할 것인가.

이민화 창조경제연구이사회 이사장·KAIST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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