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익선동 일대. 10년 이상 재개발사업 지연으로 개발이 제한되면서 노후화된 저층 주거지들이 주변 고층 빌딩들과 대조를 이룬다. /박경훈기자
역사문화유산 보존에 초점을 맞춘 서울시의 사대문 안 도심 관리 정책이 주민들과 잇달아 마찰을 빚고 있다. 서울시를 상대로 한 지역 주민들의 행정소송이 이어지는 한편 일부 지역은 서울시의회에 반대 청원을 냈다. 보존가치가 있는 지역의 대규모 개발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 서울시와 재산권 침해라는 지역 주민들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시가 지난 3월 직권해제 절차를 마무리한 사직2도시환경정비구역 조합이 25일 서울행정법원에 서울시를 상대로 하는 직권해제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사직2구역과 함께 직권해제된 옥인제1주택재개발정비구역 조합은 지난해 12월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해 공판 절차가 진행 중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역사 문화적 가치 보존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주민 의사와 무관하게 정비구역을 직권해제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하고 이를 근거로 사직2·옥인1구역의 직권해제를 결정했다. 이에 해당 구역 주민들이 반발해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사직2구역 조합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구역 내 문화재인 한양도성 보존을 명분 삼아 직권해제를 결정했지만 이미 관련 심의를 모두 마치고 2012년 사업시행 인가를 내준 곳을 다시 직권해제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옥인1구역 조합은 이달 진행된 1차 변론에서 직권해제가 결정된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 제출을 요구했고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합 측은 회의록을 근거로 도시계획위원회 의사결정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로구 익선동에서는 이 일대를 북촌·서촌과 같은 한옥보존구역으로 지정하려는 서울시의 계획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익선동 주민들은 지난달 서울시의회에 익선동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 내 한옥보존정책 반대 청원을 제출했다. 익선동 일대에 이미 보존할 가치가 있는 한옥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임에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한옥보존구역을 지정하고 건물 높이를 과도하게 제한해 재산권을 침해하려고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하철 종로3가역 근처의 익선동 165번지 일대(면적 3만여㎡)는 재개발사업 추진을 위해 2005년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으로 지정됐으나 사업이 지연되다 결국 2014년 주민 50% 이상의 동의를 얻어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해산됐다. 이후 서울시가 2015년 익선동 일대 지구단위계획 수립에 착수해 올해 2월 주민설명회를 열었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설명회는 파행으로 끝났다. 지구단위계획안에는 한옥보존구역 지정, 종묘에 인접한 익선동 일대 건물 최고 높이 기준을 5층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주민들은 이미 5층 이상 건물들이 지어진 인근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한 주민은 “종로의 보신각이나 종묘나 문화재인 것은 마찬가지인데 서울시가 보신각 주변에는 고층 건물 건축을 허용해놓고 왜 여기에는 못 짓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익선동 주변에도 이미 종로세무서(8층), 이비스엠버서더호텔(10층) 등 5층 이상의 건물들이 여러 개 들어서 있다.
서울시는 올해 중 익선동 일대에 대한 지구단위계획을 확정해 남아 있는 한옥 보존 및 한옥 개조 지원을 통해 한옥마을을 조성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익선동 내에 한옥이 필요한 곳도 있고 어느 정도 개발을 허용해줘야 하는 곳도 있다”며 “여러 여건을 검토해 지구단위계획을 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민 청원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서울시가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서울시가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역사문화유산 보존 정책 추진은 전 세계적인 추세지만 정부·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 주민들과의 협의를 거쳐 주민들이 받아들일 만한 혜택을 주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