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신인 방 선생은 지난 1918년 ‘경성 청년구락부’를 조직해 청소년 운동을 시작했다. 1920년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 천도교에 입교해 교주 손병희 선생의 딸과 결혼한 방 선생은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천도교 청년회 회원으로 참가했고 자택에서 독립신문을 등사해 배포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방 선생은 1923년에는 청소년 운동을 확대하고자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고 어린이날을 제정했다. 청소년 운동을 이끌던 방 선생은 1931년 지병으로 3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1990년 고인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