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사옥(社屋)에 대한 애착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지난 2014년 사옥을 짓기 위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감정평가 금액의 3배가 넘는 가격에 매입해 주주들의 질타를 받았던 현대차그룹, 특혜 논란에도 불구하고 송파구 잠실역 인근에 국내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를 지은 롯데그룹은 기업들의 사옥 사랑을 잘 보여주는 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나 롯데그룹 같은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들어서는 과거와 달리 사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산 매각에 나서는 곳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삼성그룹이 대표적이다. 삼성은 최근 몇 년 간 종각역에 위치한 종로타워,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 등 그룹의 상징적인 자산들을 잇따라 매각했다. 또 대우조선해양과 같이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들도 잇따라 사옥 처분에 나서면서 사옥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줄어드는 사옥, 늘어나는 임대용 오피스
사옥이 줄어드는 현상은 수치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 CBRE코리아가 자체 기준에 따라 서울 3대 권역(도심·여의도·강남)과 상암권역, 경기도 판교권역에 위치한 A급 빌딩 164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사옥용 오피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5.9%로 전년(31.7%)에 비해 5.8%포인트 줄어든 반면 임대용 오피스는 68.3%에서 74.1%로 5.8%포인트 증가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임대인의 각 계열사 및 자사의 총 임차면적이 동일 빌딩 내 70%를 넘을 경우 사옥용으로 분류했다.
임대용 오피스의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도심권역으로 나타났다. 작년 도심의 임대용 오피스 비중은 80.8%로 전년(72.3%)에 비해 8.5%포인트 증가했으며, 반면 사옥용 오피스 비중은 27.7%에서 19.2%로 8.5%포인트 줄었다. 지난해 도심에서는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이 부영그룹에 매각됐으며, 중구 다동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사옥이 외국계 투자자에게 팔리는 등 사옥 매각이 잇따랐다. 강남권역도 임대용 오피스 비중이 높아졌다. 작년 강남의 임대용 오피스 비중은 79.6%로 전년 대비 8.7%포인트 증가한 반면 사옥용 오피스는 20.4%로 집계돼 8.7%포인트 감소했다. 3대 권역 중 여의도는 유일하게 사옥용 오피스 비중이 높아졌다. 여의도의 사옥용 오피스 비중은 45.1%로 전년 대비 2.7%포인트 증가했으며, 임대용 오피스는 54.9%로 2.7%포인트 감소했다.
지난해 경영 위기에 빠진 대우조선해양이 매각한 서울 중구 다동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사옥’. 대우조선해양 사옥은 부동산자산운용사인 캡스톤자산운용이 외국계투자자와 함께 사들였다. /사진=서울경제DB
커가는 부동산펀드와 리츠 시장도 임대용 오피스 증가에 한 몫
부동산펀드와 리츠(REITs) 등 부동산간접투자 시장이 커진 것도 사옥이 줄고, 임대용 오피스 비중이 높아진 이유로 꼽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7일 기준 국내 부동산에 투자하는 부동산펀드의 자산운용규모는 25조 9,157억원(설정원본 기준)으로 10년 전인 2006년 말(3조 8,000억원)과 비교해 7배 가까이 커졌다. 리츠가 운용하는 자산규모도 꾸준히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리츠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2년 말 리츠 자산운용 규모는 9조 5,000억원 수준이었으나 현재 25조 5,000억원으로 커졌다. 부동산펀드나 리츠 모두 오피스 투자 비중이 높은 편이다. 부동산펀드의 경우 자산별 투자 비중을 따로 집계하지는 않지만 리츠의 경우 전체 운용자산 중 38.4%인 9조 8,000억원이 오피스다. 기업들이 경영 상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사옥 매각에 나설 시 이를 매입할 수 있는 투자자들이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사옥용 오피스가 줄고, 임대용 오피스가 증가하는 현상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와 달리 기업들이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사옥을 매각하는 대신 임차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고, 부동산간접투자 시장의 성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KEB하나은행이 매물로 내놓은 서울시 중구 을지로 2가에 위치한 ‘하나은행 을지별관’/사진제공=KEB하나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