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전 내내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취임 첫날 오바마케어 폐지를 제안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백악관 입성 1시간 내에 ‘외국인 범법자’ 200만명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는 것을 필두로 총 1,100만명의 불법체류자를 추방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하지만 진보적 성향의 블로그인 싱크프로그레스에 따르면 36개의 공약 중 실제로 지켜진 것은 단 2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발된 정책들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뒤집어진 공약들이다. 역대 대통령의 연보를 꼼꼼히 뒤져봐도 거의 아무런 설명 없이 이처럼 많은 정책이 이렇듯 짧은 시간에 대거 번복된 적은 없었다. 트럼프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을 “상대 국가에는 어떨지 몰라도 미국에는 분명 최악의 협정”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또 취임 첫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낡은 조직’으로 폄훼하고 수출입은행 철폐를 시사했으며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정책 파기와 공약 번복은 대통령 취임 후 불과 며칠 만에 시작됐다. 트럼프는 중국이 실제로는 환율조작국이 아니고 나토는 여러 결정적인 작전들을 수행하고 있으며 수출입은행은 미국의 많은 중소기업들에 도움을 주고 알아사드는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러왔다는 사실을 극비정보 브리핑으로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는 당연히 이런 사실들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인 양 그는 너무 당당하게 공약 번복을 발표했다. 그는 지난 2월 말 “건강보험법이 이처럼 까다롭다는 것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의 다음번 ‘교육’은 조세정책 분야에서 이뤄질 것 같다. 윤곽이 드러난 트럼프의 세제개편안은 기막힐 정도로 무책임하다. 수조 달러에 달하는 국가부채가 추가로 발생할 것이나 강력한 경기부양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공화당에도 세금협상은 흥미로운 시험대가 될 것이다. 입만 열면 국가부채를 줄여야 한다고 언급해온 정당이 미국 역사상 최대의 부채 확대(총액 기준)를 초래할 법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얻을 더 큰 교훈은 국가경영이 쉽지 않다는 것이 될 것이다. 트럼프의 매력은 그가 아웃사이더이자 사업수완과 경영관리 감각을 백악관으로 가져올 비즈니스맨이라는 점이다. 워싱턴의 부패한 정치인들과 무능한 관료들에게 ‘바깥세상’ 출신의 성공한 남자가 어떻게 안개를 헤치고 나아가느냐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100일간 트럼프의 총체적 무능을 지켜봤다. 그가 서명한 행정명령은 잇따라 법원에 의해 차단됐다. 다양한 입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주요 부서의 요직은 인선이 마무리되지 않은 채 공석으로 남아 있다. 족벌 소유의 부동산 프랜차이즈 사업체를 경영하는 것과 미국의 행정부를 이끄는 것은 차원이 완전히 달랐다.
워싱턴이 부패에 찌든 것은 사실이지만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트럼프가 일궈낸 성과가 거의 없는 진짜 이유는 미국인들이 지닌 극도의 모순된 욕구라 해야 한다. 그들은 무제한 건강보험을 원하지만 기존의 질병 때문에 의료보험 가입이 거부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의료비용이 큰 폭으로 떨어지기를 원한다. 정부의 개입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메디케어나 사회보장 같은 초대형 프로그램을 축소하거나 건강보험이나 주택 대출에 대한 세제혜택을 제거하려는 사소한 조짐만 보여도 맹렬히 반발한다.
1995년 책에서 마이클 킨슬리는 워싱턴에 대한 대중주의자의 들끓는 분노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그는 “미국 유권자들은 ‘내 세금을 깎고 세제혜택은 보존하면서 예산의 균형을 맞추라’는 양립 불가능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다. 그러고는 정치인들이 이 같은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막무가내로 분노를 터뜨린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집권이 제공할 최대의 교훈은 워싱턴의 기능장애가 정치인들의 부패 때문이라기보다 그들이 대변하는 국민의 자기 모순적 욕구 때문이라는 깨달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