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 앉아 오랜만에 만난 이모와 엄마는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정신이 없다. 서경씨는 대화를 흘려 듣다 한 대목에 꽂히고 만다.
“언니 뭐라고? 아니 개가 뭘 가입했다고?”
“우리 지젤이 말이야… 내가 아프면 누가 돌봐줘. 그래서 펫 신탁이라고 하나 가입했지 뭐.”
“아니 난 은행에서 그런 게 있다는 걸 오늘 처음 들었네. 얼만데?”
“쬐끔 넣었어. 혹시 모르니까. 한 500만원 넣었지.”
패리스힐튼과 그의 애완견. 청담동 이모와 ‘지젤’도 흡사 이런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사진제공=패리스힐튼 인스타그램
서경씨도 그 새를 못 참고 방에서 나와 수다에 동참한다. 수개월째 재테크 ‘열공’중인 터라 ‘펫신탁’ 쯤이야 수 차례 기사로 접해 봤던 터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아는 척 나선 서경씨. 엄마 앞에서 펫 신탁의 등장 배경부터, 가입방법 까지 줄줄 읊기 시작한다. “엄마, 내가 설명해 줄게” 목을 가다듬으며 서경씨는 설명을 시작한다. 펫신탁이란 미국·일본 등지에서는 이미 활성화 된 금융상품으로 반려동물의 보호자가 사망하거나 사망하지 않았어도 아플 경우를 대비해 대신 돌봐줄 새로운 주인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상품이다. 고령화와 1~2인 가구의 증가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늘면서 펫신탁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 추세다. 국내에서는 KB국민은행이 지난 해 처음으로 펫신탁을 내놨다. 일시금을 맡길 경우 200만원 이상, 월 적립식인 경우에는 1만원 이상이면 가입이 가능하다. 납입 최고 한도는 1,000만원이다. 설명을 듣던 엄마는 “별 게 다 있네”라며 연신 놀란 표정이다.
신탁은 말 그대로 고객이 금융회사를 믿고 돈이나 부동산을 맡기는 상품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펀드와 비슷하지만 돈만 굴릴 수 있는 펀드와 달리 신탁은 부동산이나 주식 등 다양한 자산을 맡아준다. 또 펀드는 이미 정해진 상품을 선택해서 가입하는 방식이지만 신탁은 고객이 원하는 방식대로 굴려달라고 은행에 요청 사항을 말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펀드는 이미 노선이 정해진 버스라면, 신탁은 개인기사가 운전하는 자가용인 셈이다. 개인 맞춤형 상품인 신탁은 펀드에 비해 최소가입금액이 높아 그동안 부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지만 금융당국이 올초 금융개혁 5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국내 신탁업 활성화를 내걸면서 점차 대중화 될 전망이다.
이미 시중에는 다양한 신탁 상품이 출시돼 있다. KEB하나은행이 선보인 ‘가족배려신탁’은 상속 분쟁을 막기 위해 살아 있을 때 상속자를 정해두고 그 사람에게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상품이다. 이런 상속 신탁도 그간엔 최소 가입금액이 3억원이었지만 KEB하나은행은 가입 금액을 대폭 낮춰 월 적립식은 1만원, 예치형은 500만원으로 대폭 낮췄다.
신탁 중에서도 이색 상품이 아닌 무난한 상품을 찾는다면 지수연계신탁(ELT)이나 상장지수펀드(ETF)신탁에 가입하면 된다. ELT는 주가나 개별 주식에 관련된 조건을 정해 놓고 해당 조건을 만족시키면 고객이 이자 수익을 얻고 만족시키지 못하면 은행이 수익을 가져가는 상품이다. 예를 들어 코스피가 만기 때까지 특정 지수를 넘으면 확정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현재 주가지수가 100인데, 3년 뒤 만기 때도 주가가 100 이상이면 수익률 10%를 보장하는 등의 방식이다. ‘중위험중수익’ 상품의 대표주자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오~ 우리 서경이 많이 똑똑해졌는데? 좋은 정보 알려줬으니 오늘은 내가 쏜다! 한우 먹을래? 파스타 먹을래?”. 이모가 지갑을 꺼내 들고 앞장선다. “당근 고기쥐~ ” 서경씨 신났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