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의문은 우리가 평소 살아가는 패턴을 돌아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공기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특별히 누구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세먼지의 농도가 심해서 외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커다란 불편을 겪고 있다. 이때 우리는 “정부와 정치인들은 미세먼지를 해결하지 않고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거야”라며 불평을 터뜨린다. 즉 평소에는 그런 사람이 있나 보다 정도로 별로 의식하지 않다가 미세먼지가 문제가 되니까 정부와 정치인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굳이 정부와 정치인이 있다는 정도로 알 뿐이고 그들을 관심의 대상으로 불러낼 필요가 없는 하지유지의 상태를 최상의 정치로 꼽았던 것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나머지 세 가지 경우를 살펴보자. 두 번째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며 칭찬하는” 친이예지(親而譽之)이다. 이 상태에서 정치인은 국민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며 자신이 무엇을 했다고 알려서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 세 번째는 “두려워하는” 외지(畏之)다. 이 상태에서 정치인은 자신을 따르지 않은 국민을 상대로 강제와 공포를 통해 지지를 얻으려고 한다. 네 번째는 “업신여기는” 모지(侮之)다. 이 상태에서 정치인은 국민을 두 편으로 갈라서 한 편의 지지를 받으려고 애쓰며 상대를 자극하고 불편하게 하니 자연히 다른 사람으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이번 선거 유세를 보면 후보자들은 자신이 최상의 지도자라고 말하지만 실상 스스로 ‘모지’의 대상이 되기도 해 ‘외지’의 방법까지 쓰는 경우도 있다.
이제 5월9일 투표장에 향하기 전에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이 노자가 말한 네 가지 정치지도자의 유형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저 사람에게 맡겨놓으면 문제가 없고 안심이 되겠다”는 최상의 후보가 있다면 제일 좋겠다. 원래 선거는 모든 것을 갖춘 흡족한 대상을 뽑는 것이 아니라 아쉽지만 그중 나은 사람을 고르는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최상의 후보가 없다면 ‘친이예지’의 후보라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직접 뽑아놓고 대통령이 업신여기거나 두려워하는 대상이 되는 불행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