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8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부모님이 계신 경북 상주를 찾았던 직장인 한선아(가명·30) 씨는 올해는 날짜를 미루기로 했다. 직장 일도 있지만 대선을 하루 앞둔 날 벌어질 부모님과의 ‘정치 설전(舌戰)’이 더욱 두려워서다. 한 씨 부모는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자 줄곧 특정 인물에 대한 지지를 강요했다. 최근 화근이 된 것은 카카오톡 가족 단체 대화방에 아버지가 올린 출처 불명의 글이었다. ‘○○○이어야만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글은 ‘위 문자를 주변 지인 30명에게 전달하면 5월9일 ○○○ 후보 당선 확실. 지금부터 빨리 퍼 나르자. 시간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씨는 “대선과 관련해 얘기하다가 자칫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건네 불효를 하는 게 아닌지 걱정돼 아예 상황 자체를 피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이례적으로 어버이날 하루 뒤에 치러지는 ‘카네이션 대선’을 앞두고 한 씨처럼 세대갈등을 우려해 본가 방문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어버이날 때문에 조만간 장인어른을 뵈러 가긴 해야 할 건데 선거 이야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민이다(아이디 ceekaykim)’와 ‘어버이날 본가에 가려다가 선거 앞두고 가면 얼마나 또 피곤한 일들이 벌어질지 빤히 보여 선거 끝나고 다음주에 선물 들고 귀향할까 생각이다(xena_heyum)’ 등의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더구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두고 부모와 의견 충돌을 경험했던 젊은 세대는 세대 간 갈등을 피하고 싶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촉매제는 다름 아닌 SNS. 스마트폰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출처 불분명의 가짜 뉴스가 각 가정의 대화 주제에 오르고 건전한 정치 토론마저 방해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일반 국민의 가짜뉴스에 관한 인식’ 보고서에서 20∼50대 성인 1,084명의 32.2%(350명)가 가짜 뉴스를 접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투표는 각자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행사해야 할 권리다. 하지만 적잖은 부모 세대가 가짜 뉴스를 근거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자녀에게 권하는 배경에는 자녀 세대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20·30대 자녀를 둔 김영선(가명·61) 씨는 “딸·아들이 살아갈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이라며 “아직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만큼 판단에 길잡이가 돼준다는 측면에서 특정 후보 지지를 권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녀 세대의 상당수는 부모와 다른 입장이다. 직장인 허정윤(가명·28) 씨는 “맹목적 지지가 안타깝다”며 “부모님과의 정치적 대화 자체를 피하기보다는 각자의 정치적 견해를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