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선 한국바이오협회 회장 인터뷰./송은석기자
“회사를 차리고 돈 버는 일을 해보니 이게 정말로 쉽지가 않습디다. 좋은 말로 하면 ‘산전수전’을 다 겪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슬아슬 교도소 담장을 걷는 일이더군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오 기업들은 반드시 ‘선한 의지(Good Will)’를 갖춰야 합니다. 그리고 고객들에게 그런 ‘선한 의지’를 인정받는 일이 결국 개별 바이오 기업들의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이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서정선 회장에게 기업인으로 바이오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서 회장은 한국바이오협회의 협회장인 동시에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를 이끄는 저명한 학자이며 20년 역사의 1세대 바이오벤처 마크로젠의 창업주 겸 회장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의료는 생체정보(라이프로그)나 진료기록 등에서부터 얻을 수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가 어떤 질병에 상대적으로 취약해 어떤 예방을 해야 하는지를 미리 ‘예측’하는 형태로 이뤄질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환자들로부터 의미 있는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일이죠. 그들의 동의하에 정보를 제공 받지 않으면 기업은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이런 날이 오는 순간 환자들이 과연 ‘나쁜’ 의도를 가지고 개인정보를 남용할 것 같은 기업을 택할까요.”
서 회장은 이 같은 미래형 정밀의료가 정착되는 순간 ‘의사-환자’의 관계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풍부한 데이터만 확보할 수 있다면 기초적인 분석이나 해석은 얼마든지 인공지능이 해주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과거에는 의사가 환자의 정보를 모두 쥔 채 해석하고 휘둘렀다면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해석한 정보를 환자에 어떻게 적용하면 좋을지를 함께 고민하고 조언하는 ‘돌보미’ 역할을 하리라 전망한다. 의료가 ‘참여의학(Participatory medicine)’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지만 국내 의료계가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는 미지수”라고 부연했다.
서 회장은 이 같은 신념을 바탕으로 실제로 기업의 ‘선한 의지’가 인류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기업의 경쟁력으로도 이어지게끔 하는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일례로 마크로젠이 20주년을 맞는 올해 74억 세계 인류 모두에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가 받아 유명세를 탄 브라카(BRCA1)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를 검진키트 비용만 받고 무상으로 제공하는 빅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 회장은 “유방암 발병 위험이 있는 사람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어 좋고 마크로젠은 글로벌적으로 유방암 관련 유전자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기에 서로 ‘윈윈’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서 회장의 충고와 조언은 어찌 보면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그늘’을 반영하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솔직히 ‘폭탄 같은 기업’들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적도 많습니다.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넘어가기를 저부터 간절히 바라죠.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결코 멀리 갈 수 없습니다.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 큰 미래와 인류를 고민하는 것, 능력도 능력이지만 기업으로서의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