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학습효과'에…유럽 '극우 포퓰리즘' 사그라드나

메르켈, 獨 지방선거서 2연승 거둬…총리 4선연임 파란불
오스트리아·네덜란드·영국 등도 극우정당 지지율 감소세
佛 대선 패배한 FN은 당명교체 검토 '극우 지우기' 나설 듯
'국제 사회 혼란 유발' 트럼프 국정미숙으로 각국 경각심 커진 듯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으로 정점에 달했던 포퓰리즘·우경화 바람이 올해 들어 주춤하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이후 극우정당의 영향력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최근 선거 결과는 이 예상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외신들은 지난해 극우세력의 승리가 국정운영의 미숙을 드러내고 어젠다 상실을 초래하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는 7일(현지시간) 치러진 북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의회 선거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이 32.0%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3월 자를란트 주의회선거에 이어 2연승을 기록하며 오는 9월 연방의회선거에서 총리 4선 연임 가능성을 높였다. 마르틴 슐츠 전 유럽의회 의장이 대표인 사민당의 득표율은 27.2%로 2위였다.

반면 극우 성향의 독일을위한대안(AfD)은 5.9%를 얻는 데 그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AfD가 원내 진입을 위해 필요한 최소 득표율 기준인 5%를 가까스로 넘겼다며 지난해 중반 난민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와 비교하면 급격한 몰락이라고 평가했다. AfD는 지난해 3월 24%의 최고 지지율을 달성한 데 이어 지난해 각종 지방선거에서도 안정적으로 두 자릿수의 득표율을 올려 9월 총선에서 연방의회 내 주요 정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지만 최근에는 연방의회 진입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극우세력의 약화는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이후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해 12월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는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무소속 후보에게 7.6%포인트 차로 밀려 낙선했다. 개표 시비가 있었던 지난해 4월 선거의 지지율 격차 0.6%포인트보다 득표율 차이가 컸다. 3월 네덜란드 총선에서도 선거운동 중반까지 안정적 1위를 유지하던 극우 자유당(PVV)은 집권 자유민주당(VVD)에 패배했다. 5일 치러진 영국 지방의회선거에서도 영국독립당(UKIP) 의석은 총 119석 줄었으며 다음 달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러 연방의회 원내정당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극우정당의 약진에 위기감을 느낀 기존 정당들이 난민 반대, 국경 수호, 유럽연합(EU) 탈퇴 등의 정책을 일부 수용하거나 문제 해결에 나서면서 포퓰리즘 목소리가 잦아드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독일의 경우 EU가 터키와 난민협정을 맺으며 유입되는 난민 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난민 반대’ 목소리도 사그라지고 있다. 영국 보수당은 지난해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EU 탈퇴가 결정되자 이민자 통제를 위해 EU 단일시장 접근권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정경험이 풍부한 보수당이 영국독립당과 유사한 주장을 펴자 독립당의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이후 국정 미숙이 다른 국가에 본보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대표적 ‘포퓰리스트’인 트럼프 대통령이 야당뿐 아니라 여당인 공화당과도 충돌하고 국정뿐 아니라 국제사회에까지 혼란을 초래하자 각국 유권자들이 극우정당의 집권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극우정당은 생존을 위해 실현 불가능한 공약에서 후퇴하는 등 ‘극우 색깔’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내년 2월 이탈리아 총선을 앞두고 집권 가능성이 점쳐지는 오성운동당은 최근 ‘EU 완전 탈퇴’에서 ‘유로존 탈퇴’로 입장을 수정했다. 베페 그릴로 오성운동당 대표는 “분노는 이제 충분하다.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말해 집권 의지를 드러냈다. 마린 르펜 대표가 프랑스 대선에서 패배한 국민전선(FN)은 당명 교체를 비롯한 근원적인 정당개혁 추진계획을 밝혔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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